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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로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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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з серии: 마법사의 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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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토르는 나무 테이블에 앉아 분리된 활과 화살을 조립하고 있었다. 토르의 옆자리엔 오코너가 앉아 있었고 그 옆으로 나머지 열외 된 부대원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들 무기를 조립하기 위해 활을 칼로 긁어내고 줄을 묶고 있었다.

“전사라면 직접 활에 줄을 달 수 있어야 한다.”

콜크 사령관이 부대원 주변을 돌아다니며 허리를 숙여 각자의 솜씨를 판단하고 있었다.

“끈의 세기가 딱 좋군. 너무 짧아, 화살이 과녁 근처에도 못 가. 너무 느슨해, 날아가지도 않을 거야. 전쟁을 치르다 보면 무기가 망가진다. 전쟁 중에도 망가진다. 전장에 나서면서도 무기를 고칠 줄 알아야 한다. 최고의 전사는 망가진 무기를 모두 고칠 수 있는 대장장이이자 목수이자 수선쟁이이자 수리공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접 무기를 고쳐보지 않고서는 사용하는 무기의 진면목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사령관은 토르 뒤에 멈춰 섰다. 토르의 어깨너머로 몸을 기울여 토르의 손에서 나무 활을 낚아챘다. 잡아당겨진 활이 토르의 손바닥을 쓸었다.

“끈이 팽팽하지 않잖아.”

사령관이 꾸짖었다.

“활도 비틀어졌어. 이걸 들고 전장에 나가면 넌 바로 죽음목숨이야. 네 동료도 네 옆에서 죽게 만드는 거야.”

사령관은 테이블 위에 활을 던져버리고 자리를 옮겼다. 몇몇 부대원들이 키득거렸다. 얼굴이 붉어진 토르는 활을 다시 집어 들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활을 평평하게 피고 줄을 거는 작업에 열중했다. 몇 시간에 걸쳐 계속된 작업이었고 진을 빼는 잡일 중 단연 으뜸으로 꼽을 수 있었다.

다른 부대원들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창을 던지고 검술을 배웠다. 토르는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고 그곳엔 토르의 친형 셋이 검을 맞대며 서로 웃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형들은 토르보다 한발 앞 서 있었고 토르는 그늘 신세였다. 불공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왕의 부대가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뚜렷해졌고 또 부대원으로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마, 점차 적응 할거야.”

옆에 앉아있던 오코너가 다독여줬다.

재차 줄을 연결하려던 토르의 손바닥이 다 쓸려 나갔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줄을 잡아 당겼고, 드디어 신기하게도 빗장이 걸렸다. 땀을 흘려가며 있는 힘껏 줄을 연결했고 활의 양쪽 끝에 줄이 깔끔하게 걸렸다. 활이 제대로 갖춰지자 감격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해가 점점 기울어지고 있었다. 토르는 손등으로 땀을 닦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작업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봤다. 더불어 전사가 되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 동안은 다른 그림을 그려 왔었다. 부대원은 모든 시간을 훈련으로 보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작업 또한 훈련의 한 과정이라는걸 이내 받아들였다.

“나도 이런걸 하려고 여기 들어온 게 아니야.”

오코너가 토르의 생각을 읽은 듯 했다.

고개를 돌려 오코너의 한결 같은 미소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북쪽 지방 출신이야, 나도 왕의 부대 합류가 평생의 소원이었어. 난 그 동안 훈련과 전쟁만 그려왔거든. 이런 잡일은 상상도 못했지. 그렇지만 나아 지겠지. 우리가 신입이라서 그런 걸 거야. 적응해야지. 여기도 위아래 계층이 나뉜 거 같아. 그 중에 우리가 가장 어리고. 열 아홉 먹은 부대원은 이런 잡일 안 하더라. 우리도 계속 이런 것만 하진 않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배워두기에 꽤 유용한 것들이잖아.”

경적이 울렸다. 주변을 보니 모든 부대원들이 경기장 한 가운데 마련된 커다란 돌담 옆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돌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밧줄이 내려져 있었다. 담의 높이는 족히 10미터는 되는듯했다. 아래로는 건초더미가 가득 쌓여 있었다.

“뭘 꾸물거리고 있나? 움직여라!”

콜크 사령관이 외쳤다.

부대원들 주변으로 실버 대원들이 나와 소리를 질렀다. 토르가 일어서기도 전에 벌써 곁에 있던 모든 부대원들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돌담 쪽으로 달려나갔다.

이내 모든 부대원이 한곳에 모여 밧줄을 마주하고 섰다. 한데 모인 부대원들 사이에서 한껏 들뜬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드디어 다른 부대원들과 함께 서있다는 사실에 토르도 마냥 즐거웠다. 토르는 다른 부대원들 옆에 서있는 리스 왕자 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오코너도 토르 옆으로 다가왔다.

“전장에 나가보면 알게 되겠지만 대부분의 마을들은 요새화되어 있다.”

부대원들을 마주보며 사령관이 외쳤다.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은 병사의 임무이다. 요새를 공략할 땐 일반적으로 이 돌담에 걸린 것과 비슷한 밧줄과 갈고리를 사용한다.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 중 하나가 바로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이보다 더 위험한 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적들은 너희들 머리 위에서 납을 녹여 부어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살을 쏘고 돌을 던질 것이다. 절대로 제대로 된 기회를 잡을 때까지 벽을 오르면 안 된다. 기회가 오면 목숨을 걸고 벽을 오르고,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콜크 사령관이 깊게 숨을 마신 뒤 외쳤다.

“시작하라!”

토르 주변의 모든 부대원들이 행동에 나섰고, 밧줄을 하나씩 붙잡았다. 토르도 전속력으로 뛰어나가 아무도 잡지 않은 밧줄에 손을 뻗었다. 순간 토르보다 나이가 많은 다른 부대원이 밧줄을 낚아채 토르를 밀쳤다. 몸싸움 끝에 토르는 다시 주변에 가장 가까운 밧줄을 잡았다. 매듭이 진 두꺼운 밧줄이었다. 밧줄에 매달려 앞다투어 벽을 오르는 내내 토르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날은 이미 저녁 이슬이 맺힌 후였다. 축축해진 돌을 디디다 미끄러졌지만 여전히 속도를 높였다. 다른 부대원보다 앞서 오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 했고 선두에 가까웠다. 토르는 오늘 처음으로 기분이 좋았고 자부심마저 느꼈다.

난데없이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와 어깨에 부딪혔다. 위를 보니 실버 대원들이 담 꼭대기에서 작은 돌과 나무 막대기 등 온갖 종류의 파편들을 던지고 있었다. 토르와 같이 선두에 있던 한 부대원은 한 손으로 얼굴을 막아 파편을 피하다 나머지 손에 힘이 다했는지 뒤로 넘어가더니 결국 땅에 떨어졌다. 족히 6미터는 되는 높이에서 건초 더미 위로 추락했다.

밧줄을 잡고 있는 것 조차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꽉 잡고 안간힘으로 버텼다. 담 위에서 던진 곤봉이 토르의 등을 강타했음에도 토르는 계속해서 벽을 올랐다. 속도를 계속 높였고 이대로라면 일등으로 벽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무언가가 가슴을 세계 쳤다. 어디서 뭐가 날아 온 건지 당황스러웠다. 옆을 보니 부대원 하나가 중심을 놓쳐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이 토르는 다시 반동해 돌아오는 부대원과 강하게 부딪혔다.

결국 잡고 있던 밧줄을 놓쳤고 등뒤로 바닥에 추락했다. 바람을 가르며 요동치던 몸이 건초더미 위에 떨어졌다. 놀라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다.

재빨리 일어나 무릎을 굽히고 손으로 땅을 짚었다. 숨을 고르며 담 위를 올려다봤다. 부대원들은 서로 부딪히고 밀리거나 담 위에 있는 실버 대원에 밀려 죽은 파리처럼 추락해 건초 더미에 떨어졌다. 끝까지 밧줄을 쥐고 있던 부대원들의 밧줄도 모두 잘려 나갔고 이들 또한 마찬가지로 추락했다. 담 위에 올라간 부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기립하라!”

콜크 사령관이 외쳤다. 토르는 재빨리 일어나 나머지 부대원들과 같이 기립했다.

“검!”

부대원들이 일제히 목검 선반으로 달려갔다. 토르도 달려가 목검을 집어 들었다. 검의 무게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목검은 토르가 지금껏 들어본 그 어느 무기보다 두 배는 족히 무거웠다. 들고 있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무거운 검, 시작하라!”

지시가 내려졌다.

고개를 든 토르 앞에 거구 엘덴이 있었다. 토르와 부대원 선발 일에 겨뤘던 소년이었다. 토르는 엘덴을 잊을 수가 없었다. 토르의 얼굴은 아직도 그때 생긴 멍으로 욱신거렸다. 엘덴은 토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을 높이 든 엘덴의 얼굴엔 분노가 가득했다.

토르는 겨우겨우 목검을 들어올려 엘덴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검의 무게가 상당해 다시 들어 올리기가 힘들었다. 토르보다 힘에 세고 몸집이 큰 엘덴은 토르에게 다가가 흉부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토르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무릎을 구부리고 엎드렸다. 엘덴이 돌아와 토르의 얼굴을 향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다행히도 토르는 팔을 뻗어 간신히 공격을 받아냈다. 그렇지만 엘덴은 재빠르고 힘이 넘쳤다. 엘덴은 다시 돌아 토르의 다리를 공격했고 이에 토르는 옆으로 쓰러졌다.

부대원 몇 명이 두 사람 주위로 모여들었고 일부는 환호하고 일부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이들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엘덴의 승리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엘덴이 또다시 목검을 휘둘렀다. 토르는 등뒤로 세게 내려오는 목검을 보고 재빨리 몸을 굴려 피했다. 드디어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고 토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토르는 몸을 돌려 엘덴의 무릎 뒤를 강하게 가격했다. 엘덴의 약점을 정확히 가격했고 덕분에 엘덴은 주춤하며 뒤로 넘어졌다.

엘덴이 넘어져 있는 동안 토르는 몸을 일으켰다. 엘덴도 곧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엘덴의 얼굴이 달아 올랐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대립했다.

이렇게 마냥 서있으면 토르에게 불리할 뿐이었다. 토르는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 검이 너무 무거웠다. 목검 덕에 토르의 동작이 너무 느렸고 엘덴은 모든 공격을 우습게 받아 치고 토르의 가슴을 찔렀다.

목검에 갈비뼈 사이 움푹한 부분을 가격당한 토르는 쥐고 있던 검까지 놓친 채 엎드렸다. 숨도 쉬기 힘들었다.

지켜보던 몇 명의 부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토르는 무릎을 꿇은 채 비무장 상태로 목에 겨눠진 목검의 날을 느꼈다.

“항복해!”

토르는 엘덴을 노려봤다. 입술에선 짭짤한 피비린내가 났다.

“절대 안 해.”

토르의 목소리가 도전적이었다.

엘덴을 얼굴을 찌푸리고 검을 높이 들어 내리칠 태세를 갖췄다. 토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지 곧 다가올 어마어마한 타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검이 내려오는 순간 토르는 눈을 감고 집중했다. 순간 세상이 느려졌고 다른 세계로 이탈한 것 같았다. 점차 바람을 가르는 목검의 곡선과 움직임이 느껴졌고 목검이 멈추기를 염원했다.

몸이 뜨거워졌고 따끔따끔했다. 주의를 집중할수록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검이 한가운데 멈췄다. 어떻게 했는지 설명할 순 없었지만 토르는 주어진 능력으로 검을 멈췄다.

내리친 검이 갑자기 멈추자 엘덴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이때 토르는 정신의 힘을 이용해 엘덴의 팔목을 꽉 잡고 비틀었다. 마음 속으로 좀 더 세게 비틀자 얼마 안 있어 엘덴이 소리를 지르며 검을 놓쳤다.

지켜보던 모든 부대원이 말을 잃었다. 모두 얼어버린 채 휘둥그런 눈으로 겁에 질려 토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악마임이 틀림없어!”

누군가가 외쳤다.

“마법사야!”

다른 부대원이 받아 쳤다.

토르는 어쩔 줄을 몰랐다. 방금 전 뭘 한 건지 토르도 도통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당당해진 반면 두려웠다.

콜크 사령관이 부대원들을 뚫고 토르와 엘덴 사이로 나섰다.

“네가 누구든지 상관없이 이곳은 주문을 외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전쟁을 준비하는 곳이다. 너는 싸움의 규칙을 어겼다. 스스로 반성해라. 진짜 위험이 도사리는 곳에 보내줄 테니 그곳에서 어떤 주문으로 스스로를 지킬지 한번 두고 보겠다. 캐니언 협곡에 있는 수비병에게 보고하라.”

부대원들이 경악했고 곧 모두 말을 잃었다. 토르는 사령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든 매우 안 좋은 상황임은 분명했다.

“토르를 캐니언 협곡으로 보낼 수 없어요!”

리스 왕자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아직 신입이에요. 다칠 수도 있어요.”

“내가 원하면 가는 겁니다, 부대원”

콜크 사령관이 왕자를 향해 인상을 썼다.

“왕자님을 옹호해줄 폐하께서는 여기 안 계세요. 캔드릭 왕자님도요. 제가 이곳의 책임자입니다. 왕자님도 입 조심 하세요. 왕족이라는 이유로 다신 부대원의 본문을 망각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가겠어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오코너도 앞으로 나서 맞장구 쳤다.

“멍청한 것들. 이건 내가 강요한 게 아니네. 원한다면 함께 가도록.”

콜크 사령관은 엘덴과 눈을 맞췄다.

“너도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본데. 네가 이 싸움을 시작했지. 그럼 대가를 치러야지. 너도 오늘 캐니언 순찰에 함께 가도록.”

“그렇지만 주군님, 절 캐니언에 보내지 말아주세요!”

겁에 질린 엘덴이 반박했다. 엘덴이 겁에 질린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령관은 엘덴에게 걸어가 손을 올려 엘덴의 엉덩이를 만졌다.

“보내지 말아? 난 널 캐니언에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에도 보낼 수도 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내게 얘기한다면 부대에서 영영 떨어져 왕국 제일 먼 곳으로 보내주겠다.”

엘덴이 고개를 돌렸다. 너무 당황해 뭐라 대꾸도 못했다.

“이들과 함께 가고 싶은 자가 있는가?”

사령관이 크게 외쳤다.

나머지 부대원들 모두 큰 체구에도, 연장자임에도, 힘이 센데도 불구하고 다들 겁에 질려 시선을 피했다. 불안에 떠는 부대원들을 바라보던 토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캐니언 협곡이라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제 15장

토르는 단단하게 잘 다져진 길을 걸어갔다. 리스왕자, 오코너, 엘덴이 토르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네 사람은 여전히 충격에 잠겨 지금껏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토르는 리스 왕자와 오코너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이들에게 더없이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궁지로 몰고 간 두 사람의 결정이 놀라웠다. 진정한 우정을 느꼈고 더한 형제애를 느꼈다. 캐니언 협곡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는 없었으나 이 두 사람과 함께라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엘덴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려 애썼다. 엘덴은 길가의 돌멩이를 발로 차고, 분을 토하며 토르 일행과 함께 캐니언 협곡에 간다는 사실에 고스란히 짜증을 드러냈다. 그러나 토르는 엘덴에게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다. 콜크 사령관의 말처럼 엘덴이 이 모든 상황의 시작이었고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오합지졸로 분류된 네 소년들은 계속해서 지시 받은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족히 몇 시간을 걸었더니 벌써 늦은 저녁이었다. 오랜 걸음에 다리가 점점 지쳤다. 배도 너무 고팠다. 점심이라고는 작은 그릇에 담긴 보리죽이 전부였다. 목적지에 닿으면 뭐라도 먹을 수 있길 바랬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걱정거리가 있었다. 토르는 입고 있는 새 갑옷을 훑어봤다. 분명 이유가 있기에 준 갑옷이었다. 길을 떠나기 전, 토르의 일행은 모두 새로운 갑옷을 받았다. 표면이 쇠사슬로 덮인 가죽 갑옷이었다. 뿐만 아니라 단검도 받았다. 무쇠로 만든 단검이었다. 질 좋은 철은 모두 전사의 검을 만드는 데 사용됐지만 어쨌든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허리에 튼튼한 무기를 차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물론 새총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 밤 혹시라도 곤란한 일이 닥치면 지금 입고 있는 갑옷과 단검만으로는 결코 안전할 수 없었다. 부대원이 되면 가장 질 좋은 철로 만든 검과 창, 방패, 단검, 미늘 창 등 최고급 무기와 갑옷이 주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형편이 좋은 명문가의 자제들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저 목동의 자식으로 태어난 토르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끝도 없이 드리워진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두 번째 태양도 저물고 있었다. 이미 왕궁을 벗어난 지 한참이었고 앞으로는 여전히 캐니언 협곡으로 향하는 길이 기약 없이 펼쳐져 있었다. 토르는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일부 부대원들은 토르의 존재를 못마땅해 하며 토르에게 적대감을 드러냈다. 영문을 알 도리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에 토르는 풀이 죽었다. 일평생 왕의 부대 부대원이 되기만을 꿈꿨다. 그러나 토르는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이로써 모든걸 스스로 망친 것 같았다. 과연 나머지 부대원들이 자신을 동료로써 인정해 줄 날이 오긴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걸 뒤로 하고 그 많은 대원 중에서 오직 토르에게만 캐니언 순찰 임무가 내려졌다. 불공평했다. 싸움을 시작한 건 엘덴이었다. 더군다나 정체 모를 능력이 발휘됐을 땐 그게 무엇이건 토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여전히 이상한 능력의 출처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발휘하고 멈추는 법도 토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찌됐든 그런 이유로 처벌을 받는 이 상황이 억울했다.

캐니언 순찰 임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른 부대원들의 반응을 미루어보아 모두가 꺼려하는 임무라는 건 확실했다. 혹시 캐니언 임무가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닌지, 이런 식으로 왕의 부대에서 낙오시키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어찌됐던 토르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캐니언이 나오는 걸까?”

침묵을 깨고 오코너가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토르만 아니었으면 다들 이 고생 안 했을 거야.”

엘덴이 대답했다.

“네가 싸움을 걸었잖아, 기억 안나?”

리스 왕자가 끼어들었다.

“그렇지만 전 정정당당하게 승부했어요, 토르는 그렇지 못했고요. 더군다나 이게 다 토르가 자초한 거에요”

“왜? 왜 내가 이걸 자초했다는 거지?”

정말 그런 건지 혼자서 계속 고민해오던 토르가 사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물었다.

“넌 여기 있을 자격이 없으니까. 넌 부대원 자리를 정당하게 얻지 못했어. 우리는 모두 평가를 받아 선발된 거야. 너는 나와 싸운 덕에 들어온 거고.”

“그렇지만 그게 바로 왕의 부대가 하는 게 아닐까? 싸움과 승부? 난 토르가 누구보다 더 부대원 자리에 정정당당하게 들어왔다고 생각해. 우리는 선발됐지만 토르는 스스로 싸워서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걸 얻어냈어.”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엘덴은 동조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규율은 규율이에요. 토르는 선발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부대원이 될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토르와 싸운 거라고요.”

“넌 절대 날 낙오시킬 수 없어.”

토르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누구보다 부대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두고 보자고.”

엘덴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

듣고 있던 오코너가 엘덴에게 물었다.

엘덴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조용히 길을 걸어갔다. 긴장한 토르의 배가 움츠러들었다. 왠지 모르지만 토르에겐 이미 너무 많은 적이 생겨난 것 같았고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썩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신경 쓰지 마.”

리스 왕자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모두 다 들을 수 있게 토르에게 말했다.

“넌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어. 사령관이 널 캐니언에 보내려고 한 건 네게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야. 널 강하게 훈련시키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왜 이렇게까지 하겠어. 또 폐하께서 널 지목하셨기 때문에 실버 대원들도 너를 주시하는 거야. 그게 전부야”

“그렇지만 캐니언 임무가 대체 뭐죠?”

토르가 물었다.

왕자는 목을 가다듬었다. 표정에 근심이 가득했다.

“사실 나도 지금까지 캐니언 임무를 받아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얘기는 들었어.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부대원들과 내 형들로부터. 정확히는 순찰이 목적이야. 그런데 그걸 캐니언 협곡 반대쪽으로 넘어가서 해야 해.”

“반대쪽이요?”

겁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오코너가 물었다.

“반대쪽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영문을 모른 채 토르가 따라 물었다.

리스 왕자가 토르를 유심히 살펴봤다.

“캐니언 협곡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

나머지 일행 모두 토르를 쳐다봤다.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토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뻥 치지마.”

엘덴이 쏘아댔다.

“진짜야? 평생 한번도?”

오코너도 확인이 필요한 듯 물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다니신 적이 없어. 캐니언에 대해 얘기를 듣긴 했지만.”

“분명 평생 고향 땅 외에는 아무데도 안 가본 거야. 내 말이 맞지?”

엘덴이 물었다.

토르는 대답 대신 어깨를 움츠렸다. 고향 마을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게 그렇게 티가 났을까?

“정말이군,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믿을 수 없다는 듯 엘덴이 말했다.

“그만해, 토르 좀 내버려둬. 그렇다고 해도 토르가 우리보다 못한 거 하나도 없잖아.”

리스 왕자가 토르를 옹호했다.

엘덴은 리스 왕자를 비웃으며 잠시 칼집에 손을 올렸지만 이내 내렸다. 엘덴이 리스 왕자보다 덩치가 큰 건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엘덴은 왕족인 리스 왕자를 도발시키고 싶지 않았다.

“캐니언 협곡이 우리 링 대륙 내부를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막이야. 협곡 외에는 세계의 무리와 우리를 분리시켜 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 만약 미개 왕국의 야만생물체들이 캐니언 협곡을 뚫으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거야. 링의 대륙 내부에 사는 백성 모두가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어. 폐하의 병력으로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해. 캐니언 협곡은 순찰병이 지키고 있어. 주로 우리 대륙 쪽 캐니언 협곡을 순찰하지만 아주 가끔씩 그 바깥쪽도 순찰해. 그리고 바깥쪽으로 가는 길은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가장 유능한 실버 대원들만이 그곳을 지켜. 시계 방향으로 순찰하면서.

리스 왕자가 토르에게 설명했다.

토르는 캐니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캐니언 협곡 밖에 존재하는 무시무시한 악마 이야기도 충분히 들었다. 원형의 링 대륙 가장자리로 어마어마한 악의 제국이 링 대륙을 에워싸고 있고, 때문에 링 대륙 내부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다고 들었다. 그런 사실 덕에 토르는 더욱 실버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토르는 왕국과 그의 가족을 보호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캐니언 협곡에서 목숨을 걸고 왕국을 지키는 동안 자신은 편하게 왕국 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직접 왕국을 지키고 악마의 무리와 맞서고 싶었다. 토르로서는 캐니언 다리를 지키는 실버 전사들보다 더 용감한 존재가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링 대륙을 에워싸고 있는 캐니언 협곡의 두께는 대략 2000미터 정도야. 협곡을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다고 그 경계에서 야만생명체의 접근을 막는 건 실버 전사들만이 아니야. 만약 실버 전사만이 캐니언 협곡을 지켰다면 수백만이 넘는 야만생명체가 벌써 협곡을 넘어 왔겠지. 실버 전사들은 그저 캐니언의 에너지 장을 관찰하고 있어. 정말로 링 대륙 내부로 진입 하려는 야만생명체를 차단해주는 건 바로 그 검이지.”

왕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검이라니요?”

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리스 왕자는 토르를 바라봤다.

“운명의 검. 전설로 듣지 않았어?”

“이 시골 촌뜨기는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걸요.”

엘덴이 끼어들었다.

“나도 알고 있어.”

토르가 방어적으로 엘덴에게 쏘아 붙였다. 토르는 운명의 검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검과 관련한 전설을 떠올리며 수도 없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늘 운명의 검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했다. 전설적인 운명의 검. 링 대륙 내부를 보호하는 불가사의한 검. 캐니언 협곡에 강력한 에너지 장을 일으켜 침입자들로부터 링 대륙을 지켜내는 운명의 검.

“그 검은 왕궁에 있나요?”

토르가 물었다.

리스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검은 왕족 대대로 내려왔어. 그 검이 없다면 왕국도 없을 거야. 검은 계속해서 다음 세대로 전해질 거고.”

“검이 잘 지켜주는 데 왜 캐니언 협곡에 순찰병을 두죠?”

토르는 궁금했다.

“운명의 검은 큰 위협만 막아줘. 야만생물체들이 소규모거나 혼자라면 캐니언 협곡을 건널 수 있어. 그래서 실버 전사들이 그곳을 지키는 거지. 이들이 혼자이거나 혹은 적은 인원이라고 협곡을 다닐 수 있게 그냥 내버려 둔다면, 결국 자기들 마음대로 캐니언 협곡을 넘나들 거야. 또 실제로 우리 눈을 피해 그러기도 하고. 우리는 이들의 접근을 막아야 해. 야만생명체 하나 만으로도 그 피해가 엄청나거든. 몇 년 전에 넘어온 야만생명체 하나는 어는 마을의 아이들을 절반이나 죽이고 나서야 겨우 잡혔어. 운명의 검이 대대적인 공격은 막아주지만 우리가 이곳을 지키는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야.”

이야기를 다 들은 토르는 경탄했다. 캐니언 협곡이 매우 장엄하게 느껴졌다. 순찰병의 임무는 매우 중요했다. 때문에 토르는 오늘 이 중요한 임무를 경험한다는데 큰 의미를 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설명이 더 필요해. 캐니언 협곡에는 내가 말한 거 이상이 있어.”

왕자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의구심이 드리워 있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적합한 표현을 찾는 듯 목을 가다듬었다.

“캐니언 협곡은 크기가 엄청 나. 캐니언은……”

“캐니언 협곡은 남자들을 위한 곳이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말 한 마리가 발을 구르고 있었다.

토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토르의 일행 옆으로 완전 무장을 한 에레크 명장이 수려한 말을 타고 말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무기들을 싣고 다가왔다. 명장은 토르에게 시선을 고정한 일행을 향해 웃고 있었다.

놀란 토르는 명장을 올려다봤다.

“캐니언은 너희들을 진정한 사내로 만들어줄 곳이지, 아직 진정한 사내가 아니라면 말이다.”

마상경기 이후 에레크 명장과의 첫 대면이었다. 토르는 명장의 등장에 안도할 수 있었다. 캐니언 협곡으로 향하는 길에 진짜 전사를 만났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것도 다름아닌 에레크 명장이었다. 명장을 보자 토르는 천하무적이 된 것 같았다. 제발 명장과 함께 캐니언에 가길 기도했다.

“여기서 무얼 하세요? 저희와 함께 가실 건가요?”

토르는 자신의 질문이 너무 절실하게 들리지 않길 바랬다.

에레크 명장은 허리를 젖히고 웃었다.

“마음 푹 놓으렴, 어린 친구. 너희들과 함께 갈 것이다.”

“정말이죠?”

리스 왕자가 물었다.

“왕자님, 부대원이 캐니언으로 순찰 갈 땐 실버와 동행하는 게 전통이죠. 그래서 제가 그 길에 자진했습니다.”

명장은 고개를 돌려 토르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제 너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에레크 명장의 등장에 들뜬 토르는 마음이 놓였다.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좀 세운 것 같았다. 캐니언 협곡으로 가는 길에 왕국의 가장 명망 높은 전사, 에레크 명장이 동행했다. 토르는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물론 협곡 넘어서까지 함께 순찰을 돌진 못한다. 그렇지만 너희들을 데리고 협곡 다리를 건너 막사까지 인도하마. 거기서부터는 임무에 따라 너희끼리 순찰을 하게 될 거다.”

“영광입니다, 주군.”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오코너도 대답했다.

에레크 명장은 토르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네가 내 첫 번째 후견부대원이 된다면, 난 절대 너를 거기서 죽게 놔두지 않을 거다.”

“첫 번째요?”

토르가 물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패스골드는 마상장에서 다리 부상을 당했어. 적어도 8주는 쉬어야 해. 네가 이제 내 첫 번째 후견부대원이다. 그리고 나와 개인 훈련도 곧 시작 할거야,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주군.”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았다. 오랜 만에 처음으로 행운의 여신이 토르의 손을 들어준 것 같았다. 이제 토르는 가장 인정받는 명장의 첫 번째 후견부대원이 됐다. 모든 친구들을 뛰어 넘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섯 명의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가고 있었고 에레크 명장은 토르의 일행 뒤에서 말을 이끌며 천천히 걸었다.

“캐니언 협곡에 가보신 적이 있으시죠, 주군?”

토르가 물었다.

“여러 번 가봤지. 내 첫 번째 순찰 때, 내가 딱 네 나이였다.”

“첫 순찰은 어땠어요?”

리스 왕자가 물었다.

네 명 모두 궁금함을 못 이기고 뒤를 돌아 에레크 명장을 바라봤다. 명장은 한동안 말없이 말을 타고 길을 갔다.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주시했다.

“너희들의 첫 번 째 순찰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거다. 설명하기가 어렵구나. 캐니언 협곡은 이상하리만큼 이국적이고 초자연적이면서 아름다운 곳이지. 그 너머에는 상상하기도 힘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단다. 건너야 할 다리는 매우 길고 경사졌어. 많은 실버들이 그곳을 순찰하고 있지만 언제나 홀로 그곳에 있는 느낌이야.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어둠 속으로 사람을 몰아 넣는 곳이지. 수백 년 동안 실버들이 그곳을 순찰해왔어. 모두의 통과의례지. 그곳을 경험하지 않고는 진짜 위험이 무엇인지 이해 못하고, 그곳에 가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전사가 될 수 없단다.”

명장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나머지 네 소년은 불안함에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그렇다면 협곡 너머 다른 세계에 가면 충돌도 예상해야 하나요?”

토르가 물었다.

명장이 어깨를 들어 올렸다.

“뭐든지 가능하지, 미개의 왕국 와일즈에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럴 수도 있지.”

에레크 명장은 토르를 내려다봤다.

“훌륭한 부대원이 되고 싶고, 훌륭한 전사가 되길 꿈꾸는 건가?”

토르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네, 주군,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네가 꼭 배워둬야 할 게 있단다. 힘으로도 부족하고, 민첩성으로도 부족해. 싸움에 능숙한 전사도 충분하지 않아.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다.”

에레크 명장이 다시 침묵했고, 참지 못한 토르가 질문했다.

“그게 뭐죠? 가장 중요한 게 뭐에요?”

“견실한 기상을 지녀야 한단다. 두려움을 버려라. 너는 가장 어두운 숲에 들어가 가장 위험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빈틈없이 평정을 유지해야 해. 그 평정심이 항상 너와 함께해야 한다. 언제나 어딜 가든 말이야. 겁을 버리고, 항상 준비하거라. 마음을 놓지 말고, 항상 근면하거라. 다른 사람이 너를 지켜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거라. 너는 더 이상 백성이 아니다. 대신 넌 폐하의 병사야. 전사의 가장 큰 자질은 용기와 평정이다. 위험을 두려워 말고 늘 염두 해 두거라. 그러나 결코 위험을 쫓진 말거라.”

명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링 대륙은 우리의 왕국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링을 다른 세계로부터 지킨다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오히려 우리가 캐니언 협곡에 깃든 마법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어. 우리는 마법의 원형 대륙, 링에 살고 있지. 절대 잊어선 안돼. 우리의 삶과 죽음은 마법이 좌우해. 캐니언 협곡의 안팎에 절대적인 안전은 없단다. 마법을 걷어내면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단다.”

아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한참을 걸어갔다. 걷는 내내 에레크 명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되새겼다. 마치 자신에게 암시를 주는 것만 같았다. 토르가 가진 힘이 무엇이든, 토르가 어떤 마법을 소환하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실은 자부심을 느껴야 하는 왕국의 힘이라고 설명해준 것만 같았다. 토르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 전까진 마법을 사용한 대가로 캐니언에 보내진다고 생각했고 이에 죄책감까지 느꼈다. 그러나 토르가 가진 힘이 무엇이건 간에 이제는 토르가 느끼는 자부심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앞서가는 나머지 일행들 뒤로 토르와 에레크 명장이 걸어갔다. 명장은 토르와 눈을 맞췄다.

“벌서 왕궁에 막강한 적들을 만들어 뒀더구나. 내가 보기엔 네게 벗이 한 명 생길 때마다 적도 하나 느는 것 같은걸.”

명장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가득 짖고 있었다.

부끄러워진 토르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잘 모르겠어요, 주군. 제가 의도한 건 아니에요.”

“적은 의도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다. 주로 질투심으로 생겨나지. 네가 많은 사람들에게 질투심을 일으킬만한 일을 했잖니. 그렇다고 그게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란다. 네게는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돼 있어.”

토르는 명장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리를 긁었다.

“그래도 잘 모르겠어요.”

명장은 여전히 재미있어했다.

“네 적들 중에서 가장 막강한 사람은 바로 왕비님이시다. 네가 어떻게 했는진 몰라도 왕비님을 적으로 만들어놨더구나.”

“어머니께서요? 왜요?”

리스 왕자가 돌아보며 물었다.

“제도 그게 궁금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더군요.”

명장이 대답했다.

토르는 두려웠다. 왕비님이? 적이라고? 무엇을 잘못 했기에? 납득이 안됐다. 어떻게 왕비님께서 토르를 신경 쓰시게 된 걸까? 토르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순간 뭔가가 떠올랐다.

“그럼 이건 왕비님께서 지시하신 건가요? 절 캐니언으로 보내라고 하셨나요?”

에레크 명장은 고개를 돌려 심각한 모습으로 눈 앞을 주시했다.

“아마도 그러셨을 수도 있지, 아마도 그러셨을 수도.”

명장은 심사숙고하며 대답했다.

토르에게 적대감을 품은 사람들의 수와 계층이 매우 다양했다. 토르는 이제 막 왕궁에 발을 들여놨을 뿐이었다. 그곳에 속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스스로의 열정과 꿈을 쫓아왔을 뿐이며 이를 위해 사력을 다 했을 뿐이었다. 그것이 타인의 질투와 시기를 불러일으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아무리 반복해서 생각해 보아도 수수께끼마냥 이렇게 다양한 적을 둔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토르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새 언덕의 정상에 도착했다. 언덕아래로 드러난 광경에 다른 생각들은 모두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숨이 멎었다. 단순히 강한 돌풍 때문만이 아니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곳엔 캐니언 협곡이 드리워져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캐니언 협곡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뗄 수 없을 만큼 토르는 눈 앞의 장관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장대했다. 거대한 협곡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로 실버들이 줄지어 경계를 선 좁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길게 놓인 다리가 끝나는 곳이, 지구의 끝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의문이 들었다.

협곡 위로 저무는 두 번째 태양의 신록 빛과 푸른 빛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반짝이는 석양빛이 협곡에 반사됐다. 토르는 나머지 일행을 따라 다리로 걸어갔다. 다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캐니언 절벽의 밑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지구의 가장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 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행여 협곡의 바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지 짙게 덮여있는 안개 때문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절벽을 이루는 바위는 수백 년의 세월을 탄 흔적이 엿보였다. 그 형상이 마치 수세기 전 지나간 태풍의 잔상을 그대로 간직한 듯 했다. 그 어느 곳보다 원시의 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었다. 지구라는 행성이 참으로 방대하고 원기왕성하고 생생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지구가 창조되는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

토르 주변에서도 탄성이 쏟아졌다.

고작 네 명의 부대원이 캐니언 협곡을 순찰한다는 사실이 터무니없었다. 협곡의 장관 속에서 이들은 더욱 초라해 보였다.

다리로 들어서자 다리 양쪽으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실버 대원들이 이들에게 길을 내어주며 차려 자세로 경직했다. 토르의 맥박이 빨라졌다.

“우리가 무슨 수로 여기서 순찰을 할 수 있겠어.”

오코너가 말을 걸었다.

“우리 주변으로 수많은 순찰병이 있어. 우리는 수 많은 순찰병 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엘덴이 비웃었다.

다리를 건너는 내내 들려온 소리라고는 매서운 바람소리와 네 소년들의 발걸음 소리, 또 이들을 뒤따르는 에레크 명장이 탄 말발굽 소리가 전부였다. 고요히 울려오는 말발굽 소리만이 토르가 이 초현실적인 공간에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소리였다.

에레크 명장의 등장에 군기가 바짝 들어간 순찰병들은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리 위를 걸어가며 수백 명의 순찰병들을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토르는 좌우로 고개를 돌려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놓은 대못을 살폈고 그곳에 꽂힌 야만생명체의 머리를 봤다. 꽂힌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이는 머리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급히 얼굴을 돌렸다. 덕분에 지금 토르가 처한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과연 자신이 이곳을 무사히 순찰할만한 능력을 갖추기나 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오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야만생명체와의 대결을 애써 지웠다. 수많은 생명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협곡의 너머에 무엇이 토르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무사히 다시 돌아간다는 보장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여정의 진짜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을까? 토르를 죽이는 것?

끝도 없이 모습을 감춘 절벽의 가장자리를 살펴봤다. 멀리서 날카로운 새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무슨 새의 울음 소리였는지 알 수 없었다. 협곡의 너머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얼마나 낯선 모습일지 궁금했다.

진정으로 토르가 걱정하는 건 동물이나 못에 박힌 야만생명체의 머리가 아니었다. 이 곳이 주는 느낌이 가장 두려웠다. 자욱한 안개 때문인지 거센 바람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혹은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하늘 때문인지 석양의 푸른 빛 때문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초현실적인 장관에 토르가 맥없이 도취됐다는 사실이었다. 봉인된 것만 같았다. 캐니언 협곡에 드리워진 무거운 기운을 느꼈다. 그 정체가 운명의 검에서 발휘되는 보호막인지 아니면 어떤 고대의 기운인지 궁금했다. 캐니언 협곡을 걸어가는 자신이, 단순히 거대한 땅 위를 교차하는 행위를 넘어서 다른 존재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듯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토르는 작은 마을에서 양이나 돌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난생처음으로 캐니언 협곡을 넘어, 미개의 영토에서 밤새 순찰을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제16장

태양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어두운 주홍빛이 푸른빛과 어우러져 우주를 감싸 안았다. 토르는 리스왕자, 오코너, 엘덴과 함께 미개의 왕국 와일즈의 숲으로 연결되는 좁은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토르는 안절부절 못했다. 막사에 남은 명장을 뒤로하고 이젠 토르와 그의 일행들만이 길을 나서고 있었다. 그간의 다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네 소년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절실한 존재였다. 에레크 명장이 함께 있어주지 못하기에 이들은 더욱 똘똘 뭉쳐야 했다. 막사에서 길을 나서기 전에 에레크 명장은 기지에서 머무르며 토르 일행이 위험에 처하면 즉시 달려가겠다고 약속하며 부대원들을 안심시켰다.

덕분에 마음이 약간 놓인 건 사실이었다.

숲 속의 길이 좁아졌다. 이국적인 풍경에 주위를 둘러보니 숲의 바닥에는 가시와 정체 모를 과일들이 잔뜩 깔려있었다. 매우 오래된 듯한 나뭇가지들은 구불구불하게 굽어 서로 연결돼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붙어있어 앞으로 가기 위해선 종종 몸을 수그려야 했다. 나무에는 나뭇잎 대신 가시가 박혀있었고 사방이 가시 박힌 나무들로 가득했다. 노란 덩굴이 나뭇가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시야를 가리는 덩굴에 손을 뻗어 걷어내는 순간 토르는 덩굴이 아니라 뱀을 만졌다는 걸 깨달았다. 토르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쳐 간신히 뱀의 공격을 피했다.

토르는 일행들이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여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모두가 마찬가지로 겁을 잔뜩 먹은 채로 토르의 행동을 이해했다. 낯선 짐승들의 알 수 없는 소리가 토르 일행을 에워쌌다. 아주 멀리에서부터 울려 퍼지기도 했고 어떤 소리는 매우 가까이서 들렸다.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자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매복을 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하늘이 더욱 짙게 드리워져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조차 힘들어졌다. 손을 더듬어 검 자루를 쥐었고 검을 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피가 안 통했다. 다른 한 손은 새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일행들도 행여 놓칠 새라 각자의 검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훌륭한 전사처럼 강해지고 자신감과 용기가 솟아나길 간절히 바랬다. 에레크 명장의 조언을 떠올렸고, 공포 속에서 평생을 살 바엔 차라리 죽음 앞에 당당히 맞서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토르는 턱을 치켜들고 대담하게 걸었다. 속도를 높여 일행들보다 앞서 나갔다. 심장이 떨렸지만 스스로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었다.

“우리가 정확히 뭘 순찰하는 거야?”

토르는 질문을 하고 나서야 질문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고, 엘덴의 조롱을 예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토르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이 휘둥그래진 엘덴의 얼굴이 보였다. 토르의 질문 덕에 엘덴이 잔뜩 겁을 먹어버렸다. 엘덴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다. 토르는 엘덴보다 어리고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포심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적들이겠지, 아마도.”

결국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적들이 누구에요? 어떻게 생겼죠?”

 

“모든 종류의 적이 다 있다고 보면 돼.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와일즈야. 와일즈엔 야만생명체뿐만 아니라 온갖 종류의 사악한 종족들이 있어.”

“그렇다면 이렇게 순찰하는 목적이 뭐죠? 이걸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거죠? 우리가 사악한 종족들을 하나 둘 죽여봤자 그들은 수백만이 넘잖아요?”

오코너도 왕자에게 물었다.

“그들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려고 온 게 아니야. 우리의 존재를 알려주려고 온 거야. 폐하를 대신해서, 캐니언 협곡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들이 넘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넘어오면 그때 본때를 보여주는 게 좀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오코너가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아니야, 아예 접근조차 못하게 하는 편이 나아. 그게 바로 이 순찰의 목적이고. 적어도 우리 형들 말에 따르면 그래.”

숲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토르의 심장이 떨렸다.

“얼마나 멀리까지 가야 하는 거야?”

엘덴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엔 떨림이 가득했다.

“콜크 사령관님께서 하신 말씀 기억나? 빨간 현수막을 회수해서 가져가야 하잖아. 그래야 우리가 순찰을 제대로 다녀 왔다는 걸 증명하지.”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도대체 현수막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아요. 사실, 앞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잘 안보여요. 우리 어떻게 돌아가죠?”

오코너가 덧붙였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토르도 오코너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어떻게 현수막을 찾는단 말인가? 혹시라도 이 모든 게 속임수가 아닌가 생각했다. 왕의 부대가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신단련이라고 믿고 싶었다. 토르는 명장에게 들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왕실에 있는 토르의 적들. 순찰을 돌고 있자니 기운이 쭉 빠졌다. 혹시 이 모든 게 미리 조작된 것인가?

갑자기 어디선가 끔직한 비명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무언가가 가로질렀다. 토르는 재빨리 검을 꺼냈고 나머지 일행도 검을 꺼냈다. 적막 속에서 무쇠 검이 검 집을 빠져 나오는 소리만 울렸다. 네 사람은 눈 앞으로 검을 든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였어?”

엘덴이 울부짖었다. 공포에 질려 목소리까지 갈라졌다.

다시 한번 짐승이 눈 앞을 가로질렀다. 숲의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빠르게 질주했다. 덕분에 모두 짐승의 모습을 자세히 보였다.

짐승의 정체를 확인하자 긴장으로 움츠러들었던 모두의 어깨가 풀렸다.

“그냥 사슴이잖아. 여태껏 본 사슴 중에 가장 이상하게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사슴이었어.”

안도감이 섞인 목소리로 토르가 대답했다.

리스 왕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왕자의 나이 치고는 꽤 성숙한 웃음소리였고 덕분에 모두가 안심했다. 왕자의 웃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왕자가 장차 왕이 되어 웃는 모습이 눈 앞에 절로 그려졌다. 토르는 리스 왕자와 함께라는 사실에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토르도 덩달아 왕자를 따라 웃었다. 겨우 사슴 하나에 지레 겁을 먹은 게 허무할 뿐이었다.

“난 네가 겁에 질리면 목소리가 갈라진다는 걸 처음 알았지 뭐야.”

왕자가 다시 웃으며 엘덴을 놀렸다.

“앞이 잘 보이기만 했어도, 두드려 패줄 텐데.”

엘덴이 대답했다.

“난 네가 잘 보이는데, 한 번 해봐.”

엘덴은 왕자를 노려봤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대신에 엘덴은 검을 칼집에 다시 꽂았다. 나머지 소년들도 모두 검을 도로 집어 넣었다. 리스 왕자가 엘덴을 놀려먹을 수 있다는 게 대단했다. 괴롭힘을 일삼는 엘덴도 사실 한번 제대로 당해봐야 했다. 엘덴이 왕자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큰데도 불구하고 겁내지 않고 그를 놀릴 수 있는 왕자가 부러웠다.

토르는 이제서야 긴장이 좀 풀렸다. 방금 전 일은 와일즈에서 첫 번째 환영 식을 치른 셈 쳤다. 기괴하게 생긴 사슴이었지만 토르 일행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토르는 몸을 쭉 펴고 웃어댔다. 살아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계속 웃어라, 비정상아. 누가 마지막에 웃는지 보자고.”

엘덴이 비꼬았다.

‘왕자나 나나 너 때문에 웃는 게 아니야,’ 토르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저 무사히 살아 있는 게 감사해서 그래.’

그렇지만 입 밖으로 발설하진 않았다. 뭐라고 말해도 엘덴의 마음은 풀리지 않을게 분명했다.

“봐봐! 저쪽!”

오코너가 말했다.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재빨리 오코너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뭇가지 위에 걸린 왕의 부대 현수막이었다.

모두 다 현수막을 향해 뛰었다.

엘덴은 나머지 부대원보다 앞서 뛰었고 팔을 저어 다른 부대원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저 깃발은 내 꺼야!”

엘덴이 소리쳤다.

“내가 먼저 발견했어!”

오코너가 반박했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잡을 거야, 그리고 내가 가지고 갈 거야!”

토르는 화가 났다. 엘덴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순간 누구든지 배너를 찾아서 가져온 사람이 포상을 받을 거라는 명장님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제서야 엘덴이 전속력으로 뛰어간 이유를 이해했다. 그래도 엘덴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었다.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행동해야 했다. 엘덴의 본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다른 누구도 깃발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뛰고 있었다. 이에 토르는 엘덴이 더욱 싫어졌다.

팔꿈치로 오코너를 제치고 깃발을 쫓아간 엘덴은 다른 부대원들보다 먼저 도착해 깃발을 잡아챘다.

그러자 난데없이 나타난 커다란 그물이 바닥에서 엘덴을 감싸며 공중으로 오므라들었다. 순식간에 엘덴은 공중에 매달린 신세가 됐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덫에 걸린 짐승 꼴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공포에 질린 엘덴이 울부짖었다.

나머지 부대원들이 엘덴 가까이 걸어가 멈춰 섰다. 리스 왕자가 웃기 시작했다.

“봐, 누가 진짜 겁쟁이인지?”

왕자는 재미있다는 듯 외쳤다.

“헛소리 하지마! 왕자든 뭐든 내려가면 당장 죽을 줄 알아!”

“아 그래? 그게 언제가 될까?”

리스 왕자가 쏘아붙였다.

“내려줘!”

엘덴은 덫에 갇혀 빙빙 돌고 있었다.

“당장 내리라고 했다!”

“오, 너 지금 우리한테 명령한 거야?”

왕자는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왕자는 고개를 돌려 토르를 마주봤다.

“어떻게 생각해?”

“제 생각엔 우리 모두 엘덴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특히 토르한테요.”

오코너가 대답했다.

“나도 찬성, 제안 하나 할게. 사과해, 진심으로 해야 해. 그럼 널 꺼내 줄 수도 있어.”

리스 왕자가 말했다.

“사과?”

엘덴이 소스라쳤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해.”

리스 왕자는 다시 토르를 바라봤다.

“오늘 밤 저 덩치녀석을 그대로 이곳에 놔둬야겠다. 짐승들한테 훌륭한 먹이 감이 될 거야. 어떻게 생각해?”

토르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참 좋은 생각이에요.”

오코너가 찬성했다.

“기다려!”

엘덴이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오코너는 덫을 타고 올라가 허공에 매달린 엘덴의 손에서 깃발을 뺐었다.

“결국 깃발은 우리 차지네.”

오코너가 말했다.

세 소년은 뒤를 돌아 길을 재촉했다.

“안돼, 기다려! 이렇게 두고 가면 어떻게 해! 그러지마!”

그 누구도 가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잘못했어! 제발! 내가 잘못했어!”

엘덴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토르가 멈췄다. 리스 왕자와 오코너는 계속 걸어갔다. 결국 리스왕자는 다시 돌아와 토르에게 물었다.

“안가고 뭐해?”

“엘덴을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요.”

엘덴이 밉긴 했지만 또 그렇다고 그를 여기다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왜 안돼? 자초한 일이잖아.”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엘덴이었다면 널 여기 놔두고 좋다고 가버렸을 거야. 왜 네가 엘덴을 걱정해?”

오코너가 거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 그렇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엘덴처럼 행동하면 안되잖아.”

왕자는 양 손을 허리춤에 얹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다시 몸을 앞으로 기울여 토르에게 귓속말을 했다.

“나도 엘덴을 여기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고. 그저 잠깐 동안만 내버려 두려고 했어. 하지만 네 말이 옳아. 엘덴은 못 버틸지도 몰라. 아마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고. 넌 너무 마음이 약해. 그게 문제야. 그렇지만 그래서 내가 네 친구가 된 거기도 해.”

왕자는 토르의 어깨를 손으로 짚고 설명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오코너가 토르의 나머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동참했다.

토르는 돌아가서 그물 위로 올라가 덫을 잘랐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덴이 떨어졌다. 엘덴은 재빨리 발을 놀려 그물을 걷어내고 흥분한 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 검! 어디 있는 거야?”

엘덴이 소리쳤다.

토르도 바닥을 살폈지만 너무 어두워 찾을 수가 없었다.

“덫이 올라갈 때 나무위로 날아간 것 같아.”

토르가 대답했다.

“검이 어디 있던지, 여긴 없는 거잖아. 그냥 포기해.”

왕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왕자님은 몰라요, 왕의 부대에는 딱 하나의 규칙만이 존재해요. 절대 자신의 무기를 잃어버리지 말라. 검이 없으면 전 돌아갈 수 없어요. 쫓겨날 거라고요!”

토르는 다시 한번 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나무 주변도 살펴보고 찾을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아봤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엘덴의 검은 없었다. 왕자와 오코너는 그대로 서 있었다. 찾아줄 필요성을 못 느낀 듯 했다.

“미안해, 검을 찾을 수가 없어.”

토르가 말을 건넸다.

엘덴은 곳곳을 찾다 결국 포기했다.

“다 너 때문이야.”

엘덴은 토르에게 삿대질을 했다.

“너 때문에 일이 이지경이 됐다고!”

“나 때문이 아니야, 너 때문이야. 네가 깃발을 보고 뛰었잖아. 네가 우리를 곤경에 빠트렸어. 너 스스로를 원망해.”

“난 정말 네가 끔찍이 싫어!”

엘덴은 토르에게 돌진해 토르의 상의를 붙잡아 땅으로 밀어 붙였다. 무방비 상태로 넘어진 토르 위로 엄청난 무게의 엘덴이 올라탔다. 몸을 굴려 빠져나가려 했지만 다시 엘덴이 몸을 돌려 토르 위를 점했다. 엘덴은 너무 크고 힘이 셌다. 엘덴을 막기가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엘덴이 토르를 놔주더니 뒷걸음질쳤다. 순간 칼집에서 검을 빼내는 소리가 들렸고 올려다보니 리스 왕자가 엘덴의 목에 칼끝을 겨누고 있었다.

오코너가 토르에게 달려와 몸을 일으켜줬다. 토르는 리스 왕자와 오코너 옆에 서서 바닥에 주저앉아 왕자의 칼을 마주한 엘덴을 내려다 봤다.

“내 친구를 다시 한번 건드린다면, 장담하겠는데, 널 죽일 거야.”

왕자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심각한 어조로 엘덴에게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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