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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로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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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з серии: 마법사의 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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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로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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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로의 원정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제 1권)

모건 라이스

모건 라이스 작가소개

모건 라이스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젊은 성인 이야기를 다룬 11권의 연작소설 ‘뱀파이어 저널(미완),’ 연작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2권의 스릴러 종말물 ‘생존 3부작(미완),’ 판타지 연작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 ‘마법사의 반지(미완)’ 13권을 집필했다.

모건 작가의 소설은 오디오 북과 인쇄 본으로 출판됐고,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중국어, 스웨덴어, 네덜란드어, 터키어, 헝가리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로 번역됐다. (이 외 언어 번역본 출판예정)

모건 작가는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www.morganricebooks.com로 방문하셔서 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무료 소설, 증정품, 무료 앱 다운로드의 혜택과 최신 단독 소식을 제공받으실 수 있으며 페이스 북과 트위터를 통한 작가와의 소통이 가능합니다!

모건 라이스 작가에 보내는 찬사

“마법사의 반지는 음모, 대항책, 미스터리, 용맹한 기사들, 실연의 아픔이 가득한 사랑의 결실, 기만, 배신 등 즉각적인 흥행요소를 고루 갖췄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매료된다. 판타지 소설 애독자라면 영구 소장도서로 추천한다.”

--도서 및 영화 평론, 로버트 메토스

“라이스 작가는 배경 설정에 있어 단순한 화법을 뛰어넘는 훌륭한 설명을 통해 소설의 시작부터 독자를 사로잡는다. 잘 쓴 소설이며 순식간에 다 읽게 된다.”

--블랙 라군 리뷰 (‘일변’ 평론)

“어린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소설. 모건 라이스 작가는 우여곡절을 훌륭하게 엮어냈다. 신선하고 독특. 연작 소설은 한 소녀......아주 특별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매우 빠른 속도로 쉽게 읽힌다. 전 연령 구독 가능.”

--더 로맨스 리뷰 (‘일변’ 평론)

“첫 장부터 몰입되어 마지막 장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서론부터 액션이 가득한 빠른 전개를 자랑하는 감탄할만한 모험 소설이다. 지루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파라노말 로맨스 길드(‘일변’ 평론)

“액션, 로맨스, 모험, 긴장으로 꽉 찬 소설. 책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사랑에 빠져라.”

--vampirebooksite.com (‘일변’ 평론)

“최고의 구성, 밤에 읽으면 멈추질 못해 큰일나는 그런 책. 극적인 결말 덕에 손에 땀을 쥐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 바로 다음 책을 구매하고 싶게 만든다. ”

--더 달라스 이그재미너 (‘사랑’ 평론)

“’트와일라잇’과 ‘뱀파이어 다이어리’에 버금가는 책이자 독자로 하여금 마지막 장까지 계속해서 읽고 싶게 만든다. 모험, 사랑, 뱀파이어에 열광한다며 이 소설이 제격이다.”

--Vampirebooksite.com (‘일변’ 평론)

“모건 라이스 작가는 다시 한번 그녀의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보여줬다……이 소설은 뱀파이어와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어린 독자를 포함해 다양한 독자층을 아우를 것이다. 예상치도 못하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결말 덕에 독자는 충격에 빠질 것이다.”

--더 로맨스 리뷰 (‘사랑’ 평론)

모건 라이스 저서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전사로의 원정 (제1권)

왕들의 행군 (제 2권)

용의 숙명 (제 3권)

명예의 눈물 (제4권)

영광의 맹세 (제5권)

용맹의 충전 (제6권)

검의 의식 (제7권)

수여된 무기 (제8권)

주술에 사로잡힌 하늘 (제9권)

방패의 바다 (제10권)

강철 집권 (제11권)

화마에 갇힌 땅 (제 12권)

여왕들의 규칙 (제13권)

생존 3부작 연작소설

아레나 원: 슬레이버서너스(제1권)

아레나 투(제2권)

뱀파이어 저널 연작소설

일변 (제1권)

사랑 (제2권)

배신 (제3권)

운명 (제4권)

욕망 (제5권)

약혼 (제6권)

맹세 (제7권)

발견 (제8권)

부활 (제 9권)

갈망 (제10권)

숙명 (제11권)

모건 라이스 저서 지금 바로 다운받기!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오디오 북으로 감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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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 2012 모건 라이스


본 전자 책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저작물입니다. 1976년 미국 저작권법 규정에 따라 허용 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문서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무단복제와 무단전제가 금지되며 데이터베이스 또는 검색 시스템에 저장하거나 저자의 사전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본 전자 책은 개인 소장용입니다. 재판매나 무단배포는 금지됩니다. 다른 사람과 책을 공유하고자 하는 경우 각각의 추가 복사물을 구매하십시오. 직접 구매하지 않았거나 개인 소장용이 아닌 책은 반환해주시기 바라며 개인 소장용을 구입하십시오. 저자의 노력을 존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이름, 등장인물, 사업, 기관 명, 장소 명, 이벤트, 사건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자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모든 이름과 생존 및 죽음에 대한 유사한 상황은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Shutterstock.com.의 허가 아래 사용된 표지 이미지 저작권 RazoomGame 소유.


목차


제 1장

제 2장

제 3장

제 4장

제 5장

제 6장

제 7장

제8장

제 9장

제 10장

제 11장

제 12장

제13장

제 14장

제 15장

제16장

제 17장

제 18장

제 19장

제 20장

제 21장

제 22장

제 23장

제 24장

제 25장

제 26장

제 27장

제 28장


“왕관을 쓴 머리는 편안히 쉴 수 없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헨리 4세, 2부 中에서

제 1장

소년은 링 대륙의 서부왕국에서 지대가 낮은 고장의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 북쪽에서 트는 동을 바라봤다. 보이는 곳마다 구불구불한 푸른 언덕이 펼쳐졌고 일련의 골짜기와 봉우리가 마치 낙타의 등처럼 울퉁불퉁 이어졌다. 첫 태양의 타오르는 주홍 빛 서광은 아침 안개 속에 머물며 반짝반짝 빛났고 그 빛은 마법이 실린 듯 소년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노여움을 살걸 뻔히 알면서도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 이렇게까지 멀리, 또 높이 언덕을 오른 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만은 상관없었다. 오늘만은 14년간 적용된 수많은 규칙과 집안일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특별한 날이었다. 오늘은 소년에게 운명이 찾아오는 날이었다.

서부 왕국의 남부 주에 터를 잡은 맥클리오드 일가의 토르그린은 단순히 토르라고 불리는걸 좋아하며 4형제 중 막내지만 아버지의 총애를 가장 못 받았다. 그는 오늘에 대한 기대감에 뜬눈으로 밤을 셌다.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며 충혈된 눈으로 첫 태양이 솟아오르길 기다렸다. 오늘은 몇 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날이었다. 이런 날을 놓치면 결국 마을에 고립돼 평생 아버지의 양떼나 돌보며 남을 생을 보내는 불행한 운명을 마주할게 뻔했다. 상상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징병 선출일. 오늘은 왕의 군대가 각 주를 돌며 왕의 부대 지원자를 엄선하는 날이었다. 토르가 한평생 꿈꿔온 일이었다. 그에게 삶의 이유는 최상의 갑옷을 입고 엄선된 무기를 소지하는 왕의 최정예 전사, 실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14세부터 19세로 구성된 왕의 부대에 먼저 가입하지 않고서는 실버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귀족 외 출신이거나 명망 높은 전사의 자식이 아니라면 왕의 부대에 지원할 수조차 없었다.

단, 몇 년에 한번 시행되는 징병제에는 예외가 적용됐다. 왕의 부대에 부족한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실버부대가 나서 온 지방을 샅샅이 뒤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극소수의 서민만이 선출됐으며 이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왕의 부대에 최종적으로 합류했다.

토르는 골똘하게 시야를 살피며 모든 움직임을 주시했다. 실버부대가 마을에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목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실버부대를 보고 싶었다. 양떼들이 그를 에워싸고 목청껏 울어대며 더 좋은 목초지인 산 아래로 다시 내려가자고 조르고 있었지만 토르는 그 소음과 악취를 떨치기 위해 노력했다. 집중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양떼나 돌보고 아버지와 형제들의 하인 노릇을 하며 가장 하대 받으면서도 제일 큰 짐 덩어리로 여겨졌던 삶을 견디게 해준 건 바로 언젠가는 이곳을 떠날 거라는 다짐 덕분이었다. 그 언젠가, 실버부대가 이곳에 당도하면 지금까지 그를 하찮게 여겼던 모든 이들이 놀라게끔 보란 듯이 선출되리라 다짐했다. 신속하게 실버부대의 마차에 올라 그 동안의 삶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토르의 아버지는 단 한번도 심각하게 토르가 왕의 부대에 지원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토르가 무언가에 지원할 자격도 갖추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토르의 아버지는 토르 외의 세 명의 자식에게 모든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열 아홉 첫째 밑으로 줄줄이 연년생인 형제 셋에 토르만 이들과 세 살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아마도 세 형제의 나이대가 비슷한 연유에서든지 토르와는 현저하게 대비되는 서로 닮은 생김새 때문이라던 지, 이 셋은 서로 붙어 다니며 토르의 존재조차 무시했다.

애석하게도 이들은 토르보다 키와 체격이 크고 힘이 세서, 작지 않은 체구의 토르지만 이들 옆에선 작아지고, 튼실한 그의 허벅지도 형제들의 참나무 통 같은 허벅지와 비교하면 비실해 보였다. 토르의 아버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머지 형제들이 훈련을 하는 동안 토르에게는 양떼를 돌보게 하고 무기를 손질하게 하며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했다. 아무도 언급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토르는 한평생 형제들의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결국엔 그들이 성취하는 업적을 지켜만 보게 될 것을. 아버지와 형제들의 생각대로라면 마을에 꼼짝없이 갇혀 가족들의 요구사항에 따라 잡일이나 하는 것이 바로 토르의 운명이었다.

불행히도 토르의 형제들은 역설적으로 토르에게 위협을 느꼈고 토르도 이를 감지했다. 형제들의 모든 시선에서, 몸짓에서 느껴졌다. 왜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형제들은 토르에게 두려움 혹은 질투심 같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토르의 생김새나 말투가 형제들과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차림새마저 뚜렷이 차이 났다. 아버지는 토르를 제외한 자식들에게 보라색과 진홍색의 최고급 외투와 금으로 도금된 무기를 마련해준 반면 토르에게는 조잡한 넝마만 쥐어줬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토르는 가진 옷가지를 최대한 잘 활용했다. 허리부분에 장식 띠를 달아 긴 코트를 묶었고 여름이 다가오자 소매 부분을 잘라 양 팔에 통풍이 잘 되도록 손질했다. 그가 걸친 셔츠는 거친 마직 단벌바지와 잘 어울렸고 형편없는 가죽 부츠는 그의 정강이까지 덮어줬다. 형제들의 가죽신에 비하면 토르의 부츠는 가죽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대로 잘 어울렸다. 전형적인 목동의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토르의 품행은 목동과 거리가 멀었다. 늠름한 자세와 자신만만해 보이는 하관, 기품이 넘치는 턱과 잿빛 눈동자가 마치 이주한 전사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곧게 뻗은 갈색 머리는 귀 뒤로 구불거리며 흘렀고 머리카락 밑으로 반짝이는 두 눈은 마치 불빛 아래 빛을 뽐내는 잉어 같았다.

징병 참석조차 허락 받지 못한 토르와 달리 나머지 형제들은 아침까지 늦잠을 자고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아버지의 응원 속에 최고의 무기를 갖추고 징병에 지원할 예정이었다. 일전에 이에 대해 아버지께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토르의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대화를 끝냈고 토르도 다신 언급하지 못했다. 너무 불공평했다.

토르는 더 이상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저 멀리서 왕실의 마차가 보이기 시작하면 집으로 곧장 달려가 아버지에 맞서 좋든 싫든 실버의 눈에 들도록 최선을 다 할 계획이었다. 나머지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징병에 보란 듯이 지원할 생각이었다. 그럼 더 이상 아버지도 막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생각만으로도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태양이 하늘높이 떠올라 이제 막 떠오르는 두 번째 태양의 초록빛과 어우러져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그 무렵 토르의 눈에 왕실의 마차가 들어왔다.

꼿꼿이 선 몸과 곤두선 머리카락에 짜릿함이 전해졌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말들이 이끄는 마차의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마차의 바퀴가 공중으로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 뒤로 연이어 오는 마차가 보일 때마다 토르의 심장은 더욱 빨리 뛰었다. 두 개의 태양 아래 어슴푸레 빛나는 황금빛 마차 행렬은 마치 물위로 뛰어오른 물고기의 은빛 등처럼 보였다.

마차를 열 두 대까지 셌을 무렵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심장은 쿵쾅거리며 요동쳤고 난생 처음으로 양떼를 방치하고 뒤돌아 넘어질 듯 언덕 아래로 향했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줄 때까지 그 무엇도 자신을 막지 못하리라 다짐했다.

*

언덕 아래로 질주하며 가까스로 멈춰 숨을 쉬었고, 나무 사이를 가르다 나뭇가지에 여러 번 긁혔지만 전혀 문제될게 없었다. 숲 속 빈 터에 도달했을 때 시야에 들어온 마을은 백토로 지은 단층 집 초가지붕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고요한 곳이었다. 일찍부터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마을 사람들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지극히 전원적인 마을이었다. 왕국에서도 하루 종일 마차를 타야 올 수 있는 곳이었고 너무 외진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링 대륙 변두리에 위치한 농촌이었고 고작해야 서부 왕국에 속한 일개 작은 마을일 뿐이었다.

토르는 마을 광장을 향해 박차를 가했고 그의 뒤로 흙먼지가 일어났다. 놀란 닭들과 마을 개들은 달리는 토르를 비켜섰고, 마당의 끓는 가마솥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본 늙은 아낙이 토르를 다그쳤다.

“천천히 가, 얘!”

아궁이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토르를 향해 늙은 아낙은 소리쳤다.

그러나 토르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집에 당도할 때까지 익숙한 그 길을 이리저리 돌아, 뛰고 또 뛰었다.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토르네 집도 별다른 장식 없이 앙상한 초가 지붕을 얹은 백토의 단층 주택이었다. 남들처럼 방 하나를 나눠, 아버지는 한쪽 벽면에서, 나머지 세 자식은 반대쪽 벽면에서 잠을 잤다. 다만 남들과 다른 게 있다면, 토르는 형제들과 아버지에게 밀려나 집 뒤편에 마련된 작은 닭장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토르도 형제들과 함께 방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들의 체격이 커지자 자기네끼리 더욱 똘똘 뭉쳐 토르를 괴롭혔고, 더 이상 함께 잘 수 있는 여유공간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토르는 크게 상심했지만 그나마 이제는 자신만의 공간이 주어진 것에 만족했고 가능한 한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지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음에도 이러한 결정은 집안에서 토르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한번 더 확인시켜줬다.

토르는 대문으로 달려들어갔다.

“아버지!”

벅찬 숨을 멈추며 소리쳤다.

“실버! 그들이 오고 있어요!”

아버지와 세 형제는 제일 좋은 옷을 갖춰 입고 아침 식사자리에 앉아있었다. 토르의 말에 이들은 벌떡 일어났다. 이내 어깨를 부딪히며 토르를 지나쳐 쏜살같이 대문 밖 길가로 뛰어나갔다.

토르도 곧장 이들을 따라 나갔다. 모두가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는데.”

첫째 드레이크가 굵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장 떡 벌어진 어깨, 다른 형제들과 같은 짧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 얇고 못마땅해 보이는 입술을 가진 그가 여느 때처럼 토르를 노려보았다.

“아무도 없네”

언제나 드레이크의 편을 드는 한 살 터울 아래 둘째 드로스가 동조했다.

“오고 있어요! 맹세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토르에게 몸을 돌려 토르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제가 봤어요.”

“어떻게? 어디서?”

붙잡힌 토르는 주저했다. 토르가 왕의 부대를 볼 수 있는 곳이라 봐야 딱 한곳, 가장 높은 언덕이라는 걸 아버지가 모를 리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가장 높은 언덕에......올라갔어요……”

“양떼를 몰고 말이냐? 양떼를 그렇게 멀리까지 끌고 가면 안된 다는걸 잘 알잖아.”

“그렇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갈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는 성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당장 집으로 가서 네 형들 검을 가져오고 칼집도 깨끗이 닦아놔라. 그래야 왕의 부대가 당도하기 전에 형들이 제대로 갖춰 입지 않겠어.”

더 이상 토르에게 용무가 없어진 아버지는 나머지 자식들에게 가버렸다. 세 형제들은 길가에서 저 멀리 밖을 내다보는 중이었다.

“우리가 뽑힐 수 있을까요?”

토르보다 세 살 많은, 토르의 세 형들 중 막내인 덜스가 물었다.

“안 뽑는 게 어리석은 게지, 올해 부대원이 부족하다 들었다. 충원이 꼭 필요하다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이곳까지 뭐 하러 오겠어. 너희 셋 모두 똑바로 서서 턱을 치켜 세우고 가슴을 쫙 피거라. 실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는 말되 그렇다고 시선을 피하지도 마. 강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해. 나약해 보여서는 안돼. 왕의 부대에 합류하고 싶다면 스스로 이미 왕의 부대원인 냥 행동하거라.”

“네, 아버지.”

세 형제가 자세를 바로 하며 동시에 대답했다.

아버지는 뒤돌아 토르를 노려봤다.

“아직까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게냐? 어서 들어가!”

토르는 집으로 뛰어가 뒷마당에 있는 무기 창고로 갔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몇 년에 걸쳐 고생스럽게 일해 모은 돈으로 형들에게 선물한 검 세 자루를 꺼냈다. 모두 최상의 은으로 장식한 칼자루에 예술품이나 진배없는 귀한 물건들이었다. 칼 세 자루를 한꺼번에 들어 그 무게에 다시 한번 흠칫 놀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토르는 재빨리 다시 집 밖 형들에게 뛰어가 각자의 검을 건네주고 아버지를 돌아봤다.

“광을 안 냈잖아?”

드레이크가 불평했다.

아버지는 못마땅해하며 토르를 돌아봤지만 뭐라 말도 꺼내기 전에 토르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부탁 드려요. 아버지께 상의 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요!”

“광을 내라고 했지 않았느냐”

“부탁 드려요, 아버지!”

토르를 나무라며 노려보던 아버지였지만 끝내는 토르에게 용건을 물어봤다.

“뭔데 그러냐?”

토르의 표정에서 간절함을 느꼈음이 분명했다.

“저도 형들과 함께 왕의 부대에 지원하게 허락해주세요.”

형제들이 토르의 뒤에서 박장대소를 터트렸고 덕분에 토르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웃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인상을 더 찌푸렸다.

“너도?”

토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제 열네 살이에요. 지원 연령이 됐다고요.”

“열네 살부터 지원할 수는 있지.”

드레이크가 어깨너머로 얕보며 받아 쳤다.

“네가 뽑힌다는 건, 가장 어린 사람을 뽑는다는 건데. 왕의 부대가 너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나를 놔두고 너를 뽑는다고?”

“무례하기 짝이 없군, 넌 늘 그랬어.”

덜스가 거들었다.

토르는 뒤돌아 형제들을 마주했다.

“형들에게 묻는 게 아니잖아요.”

이내 다시 돌아본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험악했다.

“아버지, 부탁 드려요. 제게도 기회를 주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 뿐이에요. 비록 제가 어리긴 하지만 앞으로 차차 능력을 증명할게요.”

아버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넌 전사가 될 인물이 못돼. 네 형제들과는 달라. 넌 그냥 목동으로 살면 된다. 네 인생은 모두 이곳, 내 옆에 있다. 넌 네 몫을 하고 네 형들은 형들의 몫을 하면 된다. 꿈은 분수에 맞게 꿔야지. 주어진 대로 인생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충실하도록 하거라.”

토르는 눈 앞에서 모든 꿈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안돼, 이렇게 포기할 순 없어’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

“시끄럽다!”

아버지의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분위기가 험해졌다.

“네겐 더 할말 없다. 실버부대가 오고 있다. 저리 비키고, 그들이 당도하면 알아서 행동해.”

아버지는 앞으로 나서더니 토르가 무슨 거슬리는 물건이라도 되는 양 손으로 무심히 밀어버렸다. 아버지의 우람한 손바닥이 토르의 가슴팍을 밀쳐냈다.

마을에 요란한 소음이 일어났고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나와 거리의 양쪽을 메웠다. 뿌연 먼지가 마차의 도래를 알리더니 얼마 후 천둥 소리 같은 엄청난 소음과 함께 여러 대의 마차가 각각 열두 필의 말에 이끌려 당도했다.

마치 불시에 습격하는 군대처럼 나타난 마차들이 정차한 곳은 토르의 집 근처였다. 말들은 주변을 의기양양하게 뛰어다니며 울어댔다. 뿌연 먼지가 가라앉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토르는 애타는 마음으로 실버들의 갑옷과 무기를 보기 위해 애를 썼다. 태어나 처음으로 실버를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보게 되자 심장이 요동쳤다.

선두에서 말을 이끌던 실버대원 한 명이 말에서 내렸다. 실버가 왔다. 반짝이는 고리 갑옷에 긴 검을 허리에 찬 저자가, 다름아닌 실버였다. 30대의 나이에 덥수룩한 수염과 뺨에 보이는 여러 흉터, 전장에서 얻은 것 같은 휘어진 코는 진정 사내다운 면모를 자랑했다. 토르는 지금껏 그렇게 큰 체구를 본 적이 없었다. 어깨는 남들보다 두 배나 넓었고 용모로만 보아도 그가 총 책임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실버 대원은 먼지가 가득한 땅에 발을 내디뎠다. 줄지어 서있는 소년들을 향해 걸을 때마다 그의 신발 뒤축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마을 곳곳에서 모인 소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차려 자세를 하고 있었다. 실버 대원이 되는 것이야말로 명예와 영예와 영광과 전장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토지, 명성, 재물은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최고의 신붓감과 최상의 토지, 빛나는 영광이 보장된 삶이었다. 가족 중에 실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실버가 되기 위한 첫 수순은 우선 왕의 부대에 선발되는 것이었다.

토르는 커다란 황금 마차들을 유심히 살폈고 그 안에 탈 수 있는 지원자들의 자리가 이제 몇 남지 않았다는 걸 이내 눈치챘다. 왕국의 영토가 매우 넓었기에 실버부대는 이미 그만큼 많은 마을들을 돌고 오는 길이었다. 징병이 예상보다 더 어렵고 치열할거란 현실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여기 모인 소년들이 모두 경쟁 상대였고 토르의 형들을 비롯한 웬만한 지원자들 모두 상당한 싸움 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토르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실버 대원이 가능성이 있을만한 지원자를 찾아 조용히 걷는걸 보고 있자니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대원은 길 끝에서 시작해 천천히 원을 돌며 돌았다. 모두 토르가 잘 알고 있는 소년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에도 불구하고 왕의 부대에 선발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스로 전사로서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이들에게는 징병이 두려울 뿐이었다.

토르는 모욕감을 느꼈다. 자신이야말로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더 선출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형들이 토르보다 나이가 많고 체구가 크고 힘이 세다는 이유만으로 토르가 징병에 지원할 권리조차 박탈하는 건 너무도 억울한 일이었다. 순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 실버 대원이 토르의 집 근처로 다가섰을 무렵 토르는 어느새 몸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실버 대원이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토르의 형제들 앞이었다. 대원은 형제들을 위아래로 살펴보고 흡족해 했다. 이내 형제 한 명의 칼집에 손을 뻗더니, 얼마나 단단한지를 시험이나 하듯 확 잡아 당겼다.

그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전장에서 검을 사용해본 경험이 없겠지, 맞는가?”

대원이 질문한 사람은 드레이크였다.

드레이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토르에게는 처음으로 드레이크가 긴장한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없습니다, 주군. 그러나 훈련은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훈련!”

대원은 크게 폭소하며 몸을 뒤로 돌렸고 면전에서 드레이크를 비웃는 나머지 실버대원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드레이크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드레이크가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주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드레이크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난 적군들에게 훈련이나 하며 검을 휘둘러본 자네를 두려워하라고 말해야겠군!”

대원들은 다시 한번 웃어댔다.

실버 대원은 다음으로 토르의 다른 형제를 눈여겨봤다.

“지원자 세 명이 형제였군.”

그는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쓸모 있겠군. 모두 체구가 좋고. 검증되진 않았지만 강해 보이고. 선발되려면 훈련이 많이 필요하긴 하겠군.”

대원은 잠시 망설였다.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대원은 고개를 움직여 마차의 뒤를 가리켰다.

“올라타, 빨리. 마음 바뀌기 전에.”

환희에 가득 찬 세 형제는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다. 토르의 시선에 덩달아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형제들이 선출되는걸 보고만 있자니 침울했다.

대원은 다음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토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주군!”

아버지가 토르를 노려봤다. 그러나 토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원은 가던 길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섰다.

토르는 앞으로 두 걸음 나섰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저도 한번 봐주십시오, 주군.”

잠시 놀란 대원은 상대해줄 가치도 없다는 듯 토르를 위아래로 훑었다.

“내가 안 봤었나?”

대원은 토르에게 반문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대원들도 웃어댔다. 그러나 토르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그에겐 전부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기회가 없었다.

“왕의 부대에 선발되고 싶습니다.”

대원은 토르에게 다가갔다.

“지금 나이가?”

대원은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열네 살이 되긴 했나?

“네, 주군. 2주 전에 생일이 지났습니다.”

“2주 전이라고!”

대원은 폭소를 터트렸고 나머지 대원들도 한바탕 웃어댔다.

“그렇다면 우리의 적들은 모두 자네를 보고 벌벌 떨겠군.”

토르는 가슴속에서 모멸감이 차 올랐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결코 이렇게 끝내버릴 수 없었다. 대원이 뒤돌아 걸어갔다. 그러나 토르는 그를 그렇게 보낼 순 없었다.

토르는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주군! 지금 큰 실수를 하시는 겁니다!”

대원이 다시 한번 멈춰 서서 몸을 돌리자, 사람들 속에서 탄성이 퍼져나갔다.

대원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미련한 것, 당장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는 토르의 어깨를 잡고 재촉했다.

“싫어요!”

토르는 소리를 지르며 아버지의 손을 떨쳐냈다.

대원은 다시 토르에게 다가왔고, 이에 아버지는 뒤로 물러섰다.

“실버를 조롱하면 어떠한 처벌을 받는지 알고 있느냐?”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요동쳤지만 토르는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용서해주십시오 주군,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토르의 아버지가 나섰다.

“네게 묻지 않았다.”

대원은 위화감이 가득한 얼굴로 토르의 아버지가 나서는걸 막았다.

대원은 다시 토르에게 몸을 돌렸다.

“대답해!”

토르는 말을 잃은 채 침을 삼켰다. 그가 예상한 상황은 이런 게 아니었다.

“실버를 모욕하는 일은 왕을 모욕하는 일과 다름없다.”

토르는 기억을 더듬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즉 네게 채찍질 마흔 번의 형벌이 내려질 수 있다는 뜻이지.”

“주군을 모욕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선발되고 싶었습니다. 부탁 드립니다. 일평생 꿈꿔온 일입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대원은 토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천천히 인상을 풀었다. 침묵 끝에 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젊다. 그리고 당당하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야. 좀 더 성숙해지면 찾아오도록.”

이 말을 남긴 뒤, 대원은 다른 소년들에게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고 재빨리 말에 올라탔다.

의기소침해진 토르는 떠나는 마차를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마차는 처음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토르의 눈에 들어온 건 마차에 실려가는 세 형들이었다. 마차에 몸을 실은 그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토르에게 조롱을 퍼부었다. 그렇게 토르의 눈앞에서 형제들은 떠나갔다. 이곳에서 멀리, 보장된 삶을 향해.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거리를 꽉 메웠던 마을 사람들은 볼거리가 사라지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네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머저리 같은 것아”

아버지는 순식간에 토르의 양 어깨를 움켜 쥐었다.

“너로 인해 네 형들마저 잘못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느냐?”

이에 토르는 거칠게 손을 휘저어 아버지의 두 손을 치웠지만, 아버지는 다시 목덜미를 쥐고 손등으로 토르의 얼굴을 때렸다.

따끔함에 순간 토르는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처음으로 아버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가서 양들을 데려와. 지금 당장! 그리고 오늘 식사는 꿈도 꾸지 말거라. 오늘 저녁은 굶어. 대신 오늘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곰곰이 반성하거라.”

“아예 안 돌아오는 게 좋겠네요!”

토르는 집을 나와 재빨리 언덕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토르야!”

아버지가 큰소리로 외치자 거리에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이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쳐다봤다.

토르의 빠른 걸음은 점점 속도가 붙어 달리기로 이어졌다. 가능하다면 이 곳에서 최대한 멀리 가고 싶었다. 토르는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단 하나의 꿈이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에 눈물 범벅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제 2장

분노에 잠긴 토르는 몇 시간이 넘도록 이곳 저곳으로 언덕들을 배회했다. 그러다 결국엔 언덕 위에 주저 앉아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마차가 사라지며 남긴 흙먼지가 모두 다 없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을 지켜봤다.

더 이상 마을에 방문객이 찾아올 리 만무했다. 토르는 또다시 이 작은 마을에서 행여 찾아올지 모를 실버부대를 기다리며 기약 없는 몇 년을 보내야 했다. 그마저도 만에 하나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집에 남겨진 사람은 토르와 아버지, 단 둘뿐이었다. 앞으로 토르에게 노여움을 고스란히 드러낼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또다시 아버지의 종 노릇이나 하며 살다가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토르도 아버지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게 뻔했다. 나머지 형제들이 명예를 얻는 동안, 토르는 작은 마을에 갇혀 초라하고 천한 삶에 안주해야 했다. 갑자기 분노로 피가 솟구쳤다. 이건 토르가 꿈꾸던 삶이 아니었다. 분명 아니었다.

토르는 이 상황을 바꿀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묘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짰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삶이란 고작 이런 것이었다.

몇 시간을 앉아있다 결국 낙담한 채 일어나 익숙한 마을 언덕들을 이리저리 가로질렀다. 어느새 토르는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첫 번째 태양은 이미 하늘 밑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두 번째 태양은 하늘 가장 높은 곳에 솟아 초록 빛을 내뿜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느릿느릿 걸으며, 허리 춤에서 오랜 사용으로 보기 좋게 바랜 가죽 장식 끈을 풀었다. 토르는 다시 손을 뻗어 허리에 연결된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그 동안 좋다 하는 개울가에서 하나하나 수집해둔 매끄러운 작은 돌멩이들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가끔씩 토르는 돌멩이로 새총을 쏴 날아가는 새를 맞췄다. 그러나 보통은 쥐를 겨눴다. 몇 년 동안 거듭하며 몸에 익힌 습관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맞추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움직이는 목표물을 맞췄고 그 이후부턴 뭐든 명중시켰다. 이젠 뗄래야 뗄 수 없는 취미가 돼버렸다. 새총을 쏘며 마음 속 분노도 떨쳐냈다. 형들이 검을 휘둘러 통나무를 벨 수 있을진 몰라도 돌멩이 하나로 날아가는 새를 명중시키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새총에 돌을 채우고 최대한 뒤로 잡아 당긴 뒤 온 힘을 다해 쏘았다. 마음속의 목표물은 아버지였다. 돌은 꽤 멀리 떨어진 나뭇가지를 명중시켰고 덕분에 나뭇가지가 힘없이 꺾여나갔다. 돌을 던져 생명까지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토르는 더 이상 살아있는 생명체를 겨냥하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이 오히려 두려웠고 그 누구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목표물은 오로지 나뭇가지뿐 이였다. 단, 양떼 주변에 여우가 접근할 때는 예외였다. 점차 토르의 양떼 주변에는 그 어떤 여우일지라도 얼씬조차 못했고, 덕분에 양떼들은 마을에서 가장 안전하게 방목됐다.

지금쯤 형들이 어디쯤 있을까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왕실에 당도하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형들의 향후가 눈 앞에 절로 펼쳐졌다. 최대한 옷을 차려 입고 나온 사람들의 대대적인 축하와 환영인사를 받으며 왕궁에 당도하는 형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형들은 전사들의 환영을 받는다. 다름아닌 실버부대 대원들의 환영을. 형제들은 왕의 부대에 최종 선발되고 부대 막사에서 생활하며 왕실 훈련장에서 가장 좋은 무기로 훈련을 받을 것이다. 각자 실버의 후원을 받는 후견부대원이 되고 언젠가는 실버가 되어 전용 말과 갑옷을 하사 받는 대지주가 될 것이다. 그럼 형들은 모든 축제와 왕의 만찬에 빠지지 않고 초대를 받게 된다. 매력적인 삶이 아닐 수 없었다. 토르는 이 모든걸 놓친 것이다.

전신에 고통이 전해졌다. 마음 속으로 꾹꾹 누르려 했으나 맘처럼 되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스스로에게 외쳐댔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진정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이보다 더 멋지다고. 그 삶이 정확이 어떤 것인지 알 순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곳에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이었다. 토르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언제나 느끼며 살았다. 특별한 존재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그 누구에게서도 이해 받지 못하고 과소평가됐다.

가장 높은 언덕에 오른 토르는 양떼를 찾아봤다. 훈련이 잘 된 양들은 다 함께 무리 지어 있었고 그곳에 있는 풀을 닥치는 데로 만족스럽게 뜯어먹고 있었다. 털에 염색해 둔 빨간 표식을 확인하며 양들을 하나하나 셌다. 그러나 토르는 양의 수를 모두 확인하고는 흠칫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마리가 모자랐다.

반복해서 세고 또 세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한 마리가 없어졌다.

토르는 지금까지 한번도 양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게다가 양을 잃어버리면 아버지가 토르를 가만 놔둘 리가 없었다.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이 황무지에 양 한 마리가 속수무책으로 길을 헤맨다는 생각에 토르는 더욱 속이 상했다. 무고한 생명이 고통 받는 건 그에겐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언덕 가장 높은 곳으로 황급히 올라 저 멀리 수평선까지 늘어진 여러 언덕들을 살피며 빨간 표식을 등에 품은, 홀로 된 양을 찾아보았다. 사라진 양은 무리들 중에서 가장 야생성이 강한 놈이었다. 양은 이미 멀리까지 도망친 상태였다. 게다가 수많은 장소 중에서도 다름아닌 서쪽 다쿠우드로 향하고 있었고, 이에 토르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침을 꿀꺽 삼켰다. 다크우드는 양뿐만 아니라 사람의 출입도 금지된 곳이다. 마을의 경계 너머에 있을뿐더러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때부터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란 걸 학습했다. 차마 가볼 엄두도 못 냈다. 전설에 따르면 그곳엔 미로 같은 숲과 사악한 동물들로 가득해 결국 죽어서야 헤어나올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갈등에 휩싸인 토르는 다크우드 위에 펼쳐진 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양을 그렇게 죽게 놔둘 수 없었다. 당장 서두른다면 다크우드에 가기 전에 양을 데려올 수 있을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양의 위치를 살핀 후 어둑한 하늘로 뒤덮인 다크우드를 향해 서쪽으로 재빠르게 뛰었다. 마음은 무겁게 철렁 내려앉았지만 여전히 몸은 달리고 있었다. 이젠 되돌리고 싶어도 상황을 되돌릴 수 없었다.

마치 아주 무시무시한 악몽을 향해 돌진하는 기분이었다.

*

토르는 쉬지 않고 달려 수많은 언덕을 지나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인 다크우드로 가고 있었다. 산길이 끝난 곳 맞은편에 다크우드 숲길이 펼쳐졌다. 토르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숲 속으로 힘껏 질주해 들어갔다. 발 밑에선 바삭 하고 마른 나뭇잎들이 으스러졌다.

숲 속에 진입하자마자 어둠이 토르를 덮쳤다.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들이 모든 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숲 속은 매우 추웠다. 들어선 순간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어둠이나 한기 외에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느껴졌다. 관찰 당하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토르는 고개를 올려 자신의 몸통보다 두껍고 울퉁불퉁한 아주 오래된 나뭇가지들을 둘러봤다. 가지들이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며 삐걱댔다. 숲 안으로 열 다섯 걸음 정도 걸어갔을 뿐인데 이상한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봤지만 토르가 들어온 숲의 입구는 이미 시야에서 희미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토르는 주저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으로 다크우드가 존재하는 까닭에 토르에겐 차마 헤아릴 수 없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어떤 목동도 도망간 양이 다크우드로 간다면 그 뒤를 쫓지 않았다. 설령 토르의 아버지라 할지라도. 다크우드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들려왔고 모두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오늘은 이상하게 예외였다. 토르는 깊게 자리잡은 고정관념들을 무시했고 오히려 주위 깊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 어딘가에서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 눈 앞에 펼쳐진 인생을 따라가라며 스스로를 한계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숲 속 깊은 곳을 향해 앞으로 걸어갔지만 이내 멈춰 섰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았다. 때마침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도망간 양이 지나가며 남긴 흔적이 분명했다. 토르는 그 흔적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한참 후, 그는 다시 방향을 바꿨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영락없이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신세가 됐다. 기억을 더듬어 돌아온 길을 찾으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뼛속부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이내 계속해서 전진해야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길을 재촉했다.

저 멀리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곳으로 몸을 이끌었다. 작은 빈터였다. 이내 토르는 그 곳 가장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눈 앞에는 푸른색 공단을 길게 늘어뜨린 의복을 입은 한 남자가 토르를 등지고 서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토르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존재였다. 바로 마법사였다. 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당당하게 서 있는 그는 세상을 초월한 듯 매우 고요해 보였다.

토르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법사의 존재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마주친 건 처음이었다. 의복 위에 정교하게 금빛으로 장식된 표식만 보아도 보통 마법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왕실의 문양이었다. 토르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대체 왕실 마법사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영원의 순간이 흘러간 듯 느껴졌을 때 마법사는 천천히 뒤를 돌아 토르를 마주했다. 토르는 그를 바로 알아봤다.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왕국에서 가장 명망 높은 인물 중 하나, 수 세기 동안 서부 왕국 선대 왕들의 고문 역할을 해온 왕의 직속 마법사, 아르곤. 무엇 때문에 그가 왕실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다크우드 한가운데 와있는지 헤아릴 방법이 없었다. 토르는 혹시 환영을 보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눈빛이 너를 말해주는구나.”

아르곤은 토르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고풍스런 저음이 마치 나무들이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크고 투명한 눈은 마치 토르를 투영하는 듯 보였다. 태양을 마주하는 듯한 강렬한 에너지가 마법사에게서 전해졌다.

토르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주군, 제가 방해가 됐다면 용서하십시오.”

왕의 고문에게 무례를 범하면 구금되거나 처형된다. 토르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속에 새긴 불변의 진리였다.

“일어나거라, 얘야. 무릎 꿇길 바랬다면 이미 명령 했겠지.”

토르는 천천히 일어나 마법사를 바라봤다. 아르곤은 토르 쪽으로 몇 걸음 옮겼다. 이내 멈춰 토르를 주시했고 토르는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네 어머니의 눈을 꼭 빼 닮았구나.”

토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나본 적이 없었으며, 아버지 외에 어머니를 아는 사람 또한 만나본 일이 없다. 토르를 낳다 돌아가셨다고 들었고 이로 인해 토르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가족들에게 미움 받는 이유가 어머니의 사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절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전 어머니가 없습니다.”

“진정 그런가?”

아르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혼자 널 낳았다는 말인가?”

“그런 말이 아니 오라, 주군, 제 어머니께서는 저를 낳다 돌아가셨습니다.”

“맥클라우드 가의 토르그린. 4형제 중 막내. 선발되지 못한 소년.”

토르는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르곤 같이 위상이 높은 존재가 자신을 알고 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을 사람 외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어떻게 모든걸 알고 계시죠?”

아르곤은 미소를 지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토르는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머뭇거리던 토르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 제 어머니를 아시죠? 뵌 적이 있나요? 어떤 분인가요?”

아르곤은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다시 만난다면 그때 질문하거라.”

어안이 벙벙해진 토르는 마법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혼돈스럽고 신비로운 만남이었다. 아르곤을 이렇게 떠나 보낼 순 없었기에 토르는 곧장 아르곤을 쫓아갔다.

“이곳엔 왜 오신 거죠?”

토르는 아르곤을 붙잡기 위해 서둘러 뛰었지만, 수천 년 된 상아색 지팡이를 쥔 아르곤의 움직임은 믿을 수 없이 빨랐다.

“저를 기다리셨던 건 아니죠?”

“그럼 누구였겠나?”

아르곤을 따라잡기 위해 빈 터를 뒤로하고 숲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지만 왜 저를요? 제가 여기 올걸 어떻게 아셨죠? 제게 무얼 원하시는 거죠?”

“끝이 없는 질문 세례군. 질문만 가득해. 자넨 오히려 들어야 하는데.”

토르는 빽빽한 숲 사이로 계속해서 쫓아가며 최대한 질문을 자제하려 애썼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왔구나. 고결한 노력이야. 허나 애석하게 시간만 낭비할거야. 양은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

토르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떻게 아시죠?”

“네가 절대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을 알고 있단다, 얘야, 적어도 지금은 네가 알 수 없는 것들 말이다.”

마법사의 뒤를 쫓는 내내 의문만이 가득했다.

“넌 내 충고를 듣지 않겠지. 그게 네 천성이야. 고집불통. 네 어머니처럼. 양을 구하겠다고 계속해서 찾아 돌아다닐게 뻔하구나.”

아르곤에게 속마음을 들킨 토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넌 거침없는 소년이란다. 의지가 강해. 당당하고 긍정적이야. 그러나 언젠가는 이로 인해 네가 몰락할 수도 있단다.”

토르는 이끼가 가득한 산등성이로 오르는 아르곤을 계속 뒤쫓았다.

“왕의 부대에 선발되고 싶었지.”

“네! 제게 다시 기회가 올까요? 제게 기회를 만들어 주실 수 있나요?”

아르곤은 웃었다. 저음의 공허한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바람에 토르의 등에 한기가 돋았다.

“원하는 데로 할 수야 있지. 허나 네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모두 네가 내리는 선택이 좌우하지.”

토르는 이해하지 못했다.

산마루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가던 길을 멈춘 아르곤이 토르는 바라봤다. 둘 사이의 거리는 고작 한 걸음 남짓이었고 아르곤이 발산하는 기운이 너무 강해 토르를 태워버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네 운명은 비범해. 절대 저버리지 말거라.”

토르는 눈을 크게 떴다. 운명? 비범? 덕분에 온 몸이 자신감으로 충만해졌다.

“이해하기 어려워요. 알 수 없는 말씀뿐이에요. 좀 더 말해주세요.”

아르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토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온 사방을 둘러보고 주위의 소리를 살피며 주변을 뒤졌다. 꿈을 꾼 것인가? 환영을 본 것인가?

돌아서서 숲 속을 살폈다. 산마루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니 확실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었다. 멀리서 움직임이 감지됐다. 소리를 들어보니 잃어버린 양이 분명했다.

이끼가 가득한 산등성이를 내려와 숲 속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내려가는 내내 아르곤을 마주친 일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말 일어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수 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이런 곳에 왕의 마법사가 찾아온 것인가? 그는 토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마법사가 언급한 토르의 운명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수수께끼를 풀려 하면 할수록 궁금증만 증폭됐다. 아르곤은 토르에게 의문만 잔뜩 심어준 채 질문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걸어갈수록 뭔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무언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날것만 같았다.

방향을 틀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두 발이 굳어버렸다. 예상했던 악몽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머리끝이 쭈뼛 서며 이곳 다크우드에 오기로 한 결정이 어마어마한 실수라는걸 몸소 깨달았다.

토르의 맞은편, 약 서른 걸음 너머로 시볼드가 보였다. 억센 근육과 흉측한 외모, 말과 비슷한 크기에 네 발로 서있는, 다크우드에서 아니 왕국을 통틀어 가장 무시무시한 짐승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은 없었지만 전설을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사자의 형상을 띠고 있지만 그보다 크고, 진한 홍색 빛 가죽에 이글거리는 노란 눈을 품은 짐승. 전설에 따르면, 시볼드의 심홍 빛은 무고한 아이들의 피로 물든 것이었다.

평생 동안 이 짐승을 봤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있었다면 믿을 수가 없는 지어낸 이야기가 분명했다. 시볼드와 마주쳐 살아남은 사람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일부는 시볼드가 숲의 신이자 흉조라고 믿었다. 왜 흉조라고 여겼는지 당시의 토르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한걸음 물러섰다.

시볼드의 거대한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고 양쪽 송곳니에선 침이 뚝뚝 흘러나왔다. 노란 눈동자는 토르를 주시하고 있었다. 입에 문 것은 다름 아닌 토르의 양이었다. 울부짖으며 뒤집힌 채로 송곳니에 몸이 박혀있었다. 거의 죽은 상태였다. 양이 죽을 때까지 서서히 괴롭히며 고문을 즐긴 모양새였다.

토르는 양의 비명소리를 견딜 수 없었다. 양은 꼼지락거리긴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토르는 죄책감이 들었다.

처음엔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시볼드의 속도는 무엇보다 빨랐다. 도망가는 건 이 짐승을 자극할 뿐이었다. 더군다나 양이 저런 식으로 죽어가는걸 가만히 지켜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려움에 온 몸이 굳어버렸지만 뭐든 해야 했다.

반사신경이 작용했다.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돌멩이 하나를 집어 새총에 끼웠다. 떨리는 손으로 새총을 감아 올려 앞으로 나아가 힘껏 쏘았다.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돌멩이는 적중했다. 명중이었다. 양의 눈을 적중한 돌멩이는 그대로 뼛속까지 파고들어 뇌를 격파했다.

양은 축 쳐졌다. 죽어버렸다. 목숨을 끊어 더 이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덜어줬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죽어버리자 시볼드는 분노의 눈길로 토르를 노려보았다. 서서히 큼지막한 입을 벌려 양을 바닥에 떨궜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양은 바닥에 팽개쳐졌다. 이제 시볼드의 눈에 들어온 건 토르였다.

시볼드의 복부에서부터 사악하고 깊은 으르렁 소리가 들려왔다.

시볼드가 토르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토르는 떨리는 마음으로 돌멩이 하나를 새총에 끼워 다시 한번 조준했다.

재빠르게 뛰어올라 돌진하는 시볼드는 지금껏 토르가 보아온 그 무엇보다 빨랐다. 토르는 앞으로 발을 디뎠고 제발 명중하길 바라며 돌을 던졌다. 다시 한번 돌을 던질 기회 따윈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토르가 던진 돌은 짐승의 오른쪽 눈에 명중해 눈알을 파열시켰다. 몸짓이 작은 동물을 충분히 굴복시키고도 남을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그러나 시볼드는 작은 짐승이 아니었다. 무엇도 막을 수 없었다. 상처에 비명을 질렀지만 계속해서 질주했다. 한쪽 눈 만으로도, 심지어 돌멩이가 눈을 파고 뇌리에 박혀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거뜬하게 토르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토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잠시 후 시볼드는 토르의 몸에 올라탔다. 거대한 발톱을 휘둘러 단숨에 토르의 어깨를 찢었다.

토르는 비명을 질러댔다. 칼날 세 개가 살을 베어내는 것 같았고 단숨에 뜨거운 피가 분출했다.

시볼드는 네 발로 토르를 눌러 바닥에 고정시켰다. 코끼리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마냥 무게가 상당했다. 갈비뼈가 산산조각 부서졌다.

시볼드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을 벌려 송곳니를 드러냈다. 서서히 고개를 숙이며 토르의 목덜미를 노렸다.

토르는 다가오는 시볼드의 목을 움켜쥐었다. 딱딱한 근육 덩어리를 쥔 느낌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버티기에는 힘이 부쳤다. 토르의 팔엔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한 반면, 시볼드의 송곳니는 점차 가까워졌다. 시볼드의 뜨거운 입김이 토르의 얼굴에 전해졌고 목에는 시볼드의 침이 떨어져있었다. 시볼드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토르의 귓가를 에워쌌다. 죽음을 예견한 순간이었다.

토르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신이시여. 부디 제게 힘을 내려주소서. 이 짐승을 물리치게 해주소서. 부탁 드립니다. 이렇게 애원합니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번 한번만 신세를 질 수 있게 허락해주세요.’

순간 무언가가 달라졌다. 엄청난 열이 핏줄을 타고 토르의 몸 속에서 솟구쳤고 마치 에너지 장이 그의 온 몸을 활보하는 것만 같았다. 눈을 떠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토르의 손바닥에선 노란빛이 발사되고 있었고 시볼드의 목을 다시 밀어냈을 땐 놀랍게도 짐승과 힘의 세기가 같아져 시볼드의 접근을 막을 수 있었다.

계속된 저항 끝에 결국 시볼드를 밀쳐낼 수 있었다. 힘은 점점 강해졌고 마침내 포탄처럼 강력한 원기가 느껴졌다. 얼마 후 토르는 시볼드를 3미터 밖으로 던져버렸고 시볼드는 등뒤로 나가 떨어졌다.

얼떨떨해진 토르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시볼드도 다시 일어섰고 격분한 채 토르를 향해 돌진했다. 토르는 달라진 무언가를 느꼈다. 그의 몸 안에 흐르는 힘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자신을 느꼈다.

시볼드는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그 틈에 토르는 몸을 낮춰 시볼드의 복부를 움켜쥐고 세차게 던졌다. 날아가는 짐승을 보며 알아서 나가 떨어지도록 내버려뒀다.

시볼드는 숲 속으로 날아가 나무에 세게 부딪힌 뒤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지켜보던 토르는 놀라웠다. 방금 전 던져버린 게 진정 시볼드였던가?

시볼드는 눈을 두 번 깜빡인 뒤 토르를 쳐다봤다. 이내 다시 일어나 토르에게 돌진했다.

시볼드가 토르를 덮쳤고 토르는 시볼드의 목을 잡았다. 땅 위에서 뒹굴다 시볼드가 토르 위를 올라탔다. 토르는 다시 몸을 굴려 시볼드 위에 올라탔다. 토르는 양손으로 몸을 위로 일으켜 송곳니로 공격을 시도하는 시볼드의 목을 졸랐다. 그 순간 새로운 힘이 솟구쳤고 더욱 손을 꽉 쥐어 시볼드를 제압했다. 온몸으로 힘을 퍼트리자, 이내 놀랍게도 토르는 시볼드보다 힘이 강해져 있었다.

시볼드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목을 졸랐고 마침내 시볼드가 축 늘어졌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약 일분가량 시볼드의 숨통을 놓을 수 없었다.

토르는 가쁜 숨을 쉬었다. 놀란 눈으로 땅 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상처 입은 팔을 감싸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진정 토르가 시볼드를 죽였단 말인가?

수 많은 날들 중에서도 바로 오늘, 토르는 무언의 징조를 느꼈다. 방금 전 무언가 중대한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왕국에서 가장 악명 높고 무시무시한 시볼드를 이제 막 그의 손으로 제압한 후였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었고 무기도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누가 이 사실을 믿겠는가.

자신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게 무얼 뜻하고,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록 세상이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이런 힘을 가진 존재는 오직 마법사들뿐이었다. 그러나 토르의 부모들 중 그 누구도 마법사가 아니었다. 때문에 토르도 마법사일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그가 마법사일 수 있을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아르곤이 죽은 시볼드를 내려보며 서 있었다.

“이곳엔 어떻게 오신 거죠?”

아르곤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다 보신 건가요?”

토르는 아르곤과의 만남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제가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어요.”

“넌 잘 알고 있단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인식하고 있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건……갑자기 솟구친 힘이었어요. 저도 모르던 그런 기운이요.”

“에너지 장이란다. 어느 날 모든걸 깨닫게 될 거다. 아마 조정하는 방법도 터득하겠지.”

토르는 어깨를 꽉 움켜 쥐었다. 극심한 통증에 고개를 숙여 손을 보니 피가 흥건했다. 지금 당장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다.

아르곤은 세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손을 뻗어 잡은 토르의 반대편 손을 상처 위에 올렸다. 그대로 손은 얹은 뒤 몸을 뒤로 젖히고 두 눈을 감았다.

상처 입은 팔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몇 초 뒤, 손위로 흐르던 피가 멈췄고 상처의 고통도 사라졌다.

어깨를 내려다본 토르는 의아했다. 몸이 치유되고 있었다. 남은 것이라곤 시볼드의 발톱에 긁혀 생긴 세 줄의 흉터뿐이었다. 그것마저도 이미 며칠 전 치료된 흉터처럼 살점이 서로 잘 붙어있었다. 더 이상 피도 흐르지 않았다.

경악한 토르는 아르곤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신 거죠?”

아르곤이 미소 지었다.

“내가 한 게 아니란다, 네가 했지. 난 그저 네 힘을 인도했을 뿐이야.”

“제겐 그런 치유의 능력이 없어요.”

토르는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진정 없는가?”

“이해할 수 없어요. 이 모든 게 이해되질 않아요. 부탁이에요, 말씀해주세요.”

토르는 점점 더 초조해지는 자신을 자제할 수 없어 아르곤을 재촉했다..

아르곤은 외면할 뿐이었다.

“세월을 보내며 차차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지.”

토르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 말씀은 제가 왕의 부대에 선발될 수 있다는 건가요?”

토르의 어조는 몹시 흥분돼 있었다.

“그렇죠, 시볼드도 제압했으니 저도 이제 다른 선발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요.”

“물로 그렇고말고.”

“그렇지만 선발 된 건 제 형들이에요. 제가 아니라고요.”

토르는 다시 아르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실버는 이미 한번 저를 거절했어요. 어떻게 해야 제가 선발될 수 있죠?”

“언제부터 전사가 누군가의 초대를 기다리게 된 거지?”

아르곤의 대답이 토르의 가슴 깊이 전해졌다. 덕분에 토르의 몸에 활기가 돋았다.

“그럼 제가 언제든 찾아가도 되는 건가요? 허락 없이도?”

아르곤은 미소 지었다.

“네 운명은 스스로만 좌우할 수 있어. 다른 누구도 아닌.”

토르가 눈을 깜빡이던 그 순간 아르곤은 또다시 자취를 감췄다.

토르는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이쪽이다!”

저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눈 앞에 큰 바위가 보였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 토르는 바위를 올라타 위로 향했다.

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갔지만 여전히 아르곤이 보이지 않아 토르는 의아했다.

그곳에서 보니 다크우드 나무들의 뾰족한 윗부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다크우드가 끝나는 지점도 보였고, 두 번째 태양이 짙은 녹색빛으로 저무는 것도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왕실로 가는 길이 눈에 들어왔다.

“저 길에 오르려무나, 그럴만한 용기가 있다면.”

주위를 살펴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울려대는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토르는 분명 아르곤이 주변 어딘가에서 그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르곤의 말에 동조했다.

토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위 밑으로 내려가 저 멀리 있는 길을 찾아 숲 길을 헤쳐나갔다.

그리고는 운명을 찾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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