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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로의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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Из серии: 마법사의 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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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장

그웬돌린 공주는 홀로 궁전을 걸어갔다. 나선형 계단을 쭉 따라 돌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머리 속에는 온통 토르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산책. 두 사람의 키스. 그리고 백사.

상반되는 감정이 공주를 괴롭혔다. 토르와 함께 한 시간에 매우 행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백사가 의미하는 죽음의 전조로 두려움 마음이 앞섰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못 하는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생각을 도저히 머릿속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혹시라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오빠들 중 할 명일까? 고드프리 왕자? 캔드릭 왕자? 혹시 그럼 어머니? 그도 아니면, 공주는 생각만으로도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아버지?

백사는 즐거웠던 하루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덕분에 분위기가 산산조각 나버렸고 토르와 공주는 차마 분위기를 전환할 수도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왕궁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함께 숲 속을 벗어난 이후부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따로따로 돌아왔다. 공주로서는 토르와 함께 있는 모습을 결코 어머니께 들키고 싶지 않았다. 순순히 토르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에 어머니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적절한 전략을 세울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

생각해보니 토르와의 만남이 너무 짧게 끝나 속이 상했다. 토르에게 다음에도 만나러 올 거냐고 물어보려 했었다. 다음 약속을 잡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백사를 본 충격에 너무 혼란스러워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토르가 혹시라도 자신을 무신경하게 여겼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신경 쓰였다.

궁전에 도착했을 때 공주는 폐하의 시중으로부터 폐하를 알현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왜 아버지가 보자고 하시는 건지 의문을 품은 채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아버지께서 토르와 함께 있는 걸 보신 걸까? 아버지께서 이렇게 급하게 부르실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어머니처럼 토르와 만나는걸 금지하실까?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왕은 언제나 공주 편이었다.

턱 끝까지 숨이 찰 무렵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공주는 서둘러 복도를 지났다. 공주의 등장에 예의를 표하고 문을 열어준 시중들을 지나 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 안에는 시중 두 명이 폐하 곁에 있었고 이들은 공주를 보자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

“물러가거라.”

왕이 시중들에게 명령했다.

이들은 다시 고개를 숙인 뒤 서둘러 방을 나섰고 등 뒤로 문을 닫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왕은 미소 띤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넓은 회의실을 가로질러 공주에게 다가갔다. 공주는 안도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 화난 모습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내 딸 그웬돌린.”

왕은 두 팔을 뻗어 공주를 꼭 안아줬다. 공주도 왕을 꼭 안았다. 곧이어 왕은 의자 두 개가 놓인 벽난로 옆으로 공주를 안내했다. 공주가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커다란 울프하운드 몇 마리가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의 길을 비켜줬다. 그 중 두 마리는 공주를 쫓아가 공주의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공주는 불 가까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 여름 날 치고는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졌다.

왕은 눈 앞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주시하며 벽난로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왜 불렀는지 알고 있느냐?”

공주는 왕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여전히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왕은 놀란 듯 보였다.

“저번에 내렸던 결정 말이다. 네 형제들 앞에서 내린 후계 결정. 바로 그걸 너와 의논하고 싶었다.”

무겁던 공주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토르와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 정치 문제였다. 바보 같은 정치, 공주는 안중에도 없었다. 공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긴장이 풀린 것 같구나. 뭘 예상하고 왔던 것이냐?”

왕은 통찰력이 깊었다. 언제나 그랬다. 공주에게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모두 읽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늘 아버지 앞에서는 조심해야 했다.

“아무것도요, 아버지.”

왕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말해보거라. 내 결정에 대한 네 의견은 어떠하냐?”

“결정이요?”

“후계자 말이야! 왕국을 다스릴!”

“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럼 누구겠느냐?”

왕이 웃었다.

공주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버지, 굳이 말씀 드리자면 놀랐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전 장자가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여자의 몸이에요. 정치에 대해선 문외한이에요. 관심도 없고요. 왕국을 다스리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전 정치에 욕심이 없어요. 왜 절 선택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널 택했단다.”

왕이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바로 네가 왕좌를 열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넌 왕위를 탐하지 않아. 그리고 정치에 있어서도 넌 백지 상태다.”

왕은 깊게 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넌 인간의 습성을 이해하고 있어. 통찰력이 남달라. 나를 닮았지. 넌 네 어머니로부터 빠르고 명확한 두뇌를 물려 받았고 내게서는 사람을 다루는 능력을 물려 받았단다. 넌 본능적으로 사람을 판단할 줄 알아. 그들을 꿰뚫어 본단다. 그리고 그게 바로 왕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다른 이의 본질을 읽어내는 능력, 그거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나머지는 모두 기교에 불과해. 네 사람들을 정확히 파악해라. 그들을 이해하고 네 직감을 믿어라. 그들에게 환심을 얻어. 그거면 된다.”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분명 좀 더 많은 자질이 필요할거예요.”

“그렇지 않다. 네 기질이면 모든 걸 다 다스릴 수 있단다. 분명 훌륭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

“그렇지만 아버지, 잊고 계시는 게 있어요. 우선 전 왕위 따위는 관심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당장 돌아가시는 게 아니잖아요. 모두 다 언니 결혼식 날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바보 같은 전통 때문이에요. 왜 이런 일에 연연하세요? 저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겠어요. 생각도 안 할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절대 돌아가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 모든 얘기가 다 소용 없게끔 말이에요.”

왕은 엄숙한 얼굴로 목을 가다듬었다.

“아르곤과 얘기를 나눴다. 내 앞날이 그다지 밝지 않다더구나. 나도 이미 느끼고 있단다. 준비를 해 둬야 해.”

공주는 순간 몸이 죄어오는 것 같았다.

“아르곤은 바보에요. 단지 마법사잖아요. 그가 한 말의 절반은 일어나지도 않았다고요. 무시하세요. 그러 바보 같은 전조에 굴복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괜찮을 거에요. 영원히 죽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왕은 천천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슬픔이 가득한 왕의 얼굴을 보자 공주는 다시 한번 몸이 죄어오는 걸 느꼈다.

“그웬돌린, 사랑하는 내 딸. 네가 준비를 해줬으면 싶구나. 네가 왕국의 다음 지도자가 되어줬으면 한단다. 심각하게 말하는 거란다. 네게 청하는 게 아니야. 명령하는 거야.”

진지한 표정으로 공주를 바라보는 왕의 눈빛이 매우 어두웠다. 이에 공주는 덜컥 겁이 났다. 한번도 아버지에게서 볼 수 없던 표정이었다.

공주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바람에 손을 올려 눈물을 닦아냈다.

“네가 널 슬프게 했나 보구나.”

“그러니까 이런 얘기 그만 해요.”

공주가 울며 부탁했다.

“아버지 절대로 돌아가시면 안돼요.”

“미안하지만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내 말에 대답해 주겠니.”

“아버지, 아버지를 거절할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알겠다고 대답하거라.”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왕국을 다스려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려운 게 아니란다. 고문관들이 늘 너와 함께 할거야. 네가 가장 명심해야 할 사항은 바로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다. 너 자신을 믿어라. 부족한 네 경험과 순진함이 널 훌륭한 통치자로 만들어 줄 거야. 넌 진실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약속해다오.”

공주는 왕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이 모든 게 왕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공주는 어서 빨리 이 논의를 끝내고 싶었다.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기분을 전환시켜드리고 싶었다.

“알겠어요, 약속 드릴게요. 이제 기분이 좀 나아지셨어요?”

왕은 몸을 뒤로 젖혔다. 공주의 눈에 크게 안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비쳐졌다.

“그렇단다, 고맙구나.”

“다행이에요, 그럼 이제 다른 얘기 해도 될까요? 진짜 일어날만한 일에 대해서요?”

왕은 몸을 뒤로하고 크게 웃어댔다. 마음이 훨씬 가벼워 보였다.

“내가 이래서 우리 딸을 사랑하지. 늘 행복하거든. 늘 날 웃게 해주지.”

왕은 공주를 유심히 살폈다. 공주는 왕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만나는 남자가 있는 게냐?”

공주는 얼굴을 붉혔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왕을 등지고 섰다.

“죄송해요, 아버지. 그렇지만 제 사생활인걸요.”

“네가 왕비가 되면 더 이상 사생활로 치부되지 않는단다. 그렇지만 캐묻진 않으마. 어쨌든 네 어머니께서 너의 알현을 원하신다. 네게 그다지 너그럽지 않을 모양이다. 이만 가보도록 허락해야겠구나. 마음의 준비를 해두거라.”

긴장한 공주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봤다. 이곳이 싫었다. 이 곳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상관 없었다. 소박한 마을에서 소박한 농장을 일구며 토르와 함께 소박하게 살고 싶었다. 모든걸 벗어버리고 싶었다. 공주를 조종하려는 모든 세력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어깨위로 다정한 손길이 느껴져 돌아보니 왕이 웃으며 공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어머니가 혹독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왕비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난 항상 네 편인걸 명심하거라. 사랑에 관한 한 누구든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해.”

공주는 팔을 뻗어 왕을 꼭 끌어안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아닌 부친만을 사랑했다. 공주의 전부를 걸고 부디 아버지만은 백사의 저주와는 무관하길 기도했다.

*

공주는 왕비의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복도를 지나 또다시 복도를 걸었고 방향을 틀어 다시 복도를 지나 색색으로 물들인 유리창문을 옆에 두고 걸어갔다. 왕비의 소환이 영 내키지 않았다. 왕비가 마음대로 자신을 조종하려는 게 싫었다. 여러모로 왕국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인물은 왕비였다. 왕비는 다방면으로 왕보다 강했다. 본인의 입지를 굳혔고 쉽게 굴복하지 않았다. 물론 왕국은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맥길 왕은 늘 강인한 모습으로 역대 가장 현명한 왕의 면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왕이 궁전으로 돌아오면, 남들의 이목을 피해 늘 왕비의 의견을 구했다. 왕비의 총명함은 왕을 뛰어 넘었다. 더욱 냉정했고, 계산적이었고, 강했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바위 같았다. 게다가 가족문제에 관한 한 철저한 철권통치를 지향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특히 그것이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되면 무슨 수를 써서든 꼭 이루고야 말았다.

현재 왕비의 무자비함은 공주를 향해 있었다. 공주 또한 왕비를 만나는데 대비해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토르 일로 공주를 소환하는 것이 분명했고 혹시라도 토르와 함께 있는걸 들켰을까 염려했다. 공주는 어찌됐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거라 결심했다. 만약 왕실에서 쫓겨난다면 그에 수긍하기로 했다. 왕비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공주를 지하감옥에 가두고도 남았다.

왕비의 회의실 앞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참나무 재질의 나무 문을 열고 몸을 비켜섰다. 공주가 안으로 들어섰고 시녀들은 곧장 회의실 문을 닫았다.

왕비의 회의실은 왕의 회의실과 비교해 규모가 훨씬 작은 대신 아늑했다. 바닥에는 커다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찻잔 세트와 게임보드가 벽난로 옆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는 우아한 멋을 풍기는 노란 벨벳 의자 세트가 있었다. 왕비는 이들 의자 중 하나에 앉아 있었다. 공주가 오는 것을 알고도 등을 돌린 자세였다. 벽난로를 바라보며 차를 음미한 뒤 게임보드 위에 조각 하나를 움직였다. 왕비의 뒤로 시녀 두 명이 서있었다. 한 명은 왕비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고 다른 시녀는 왕비가 입은 드레스의 허리끈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들어오렴, 얘야.”

왕비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왕비가 시녀들을 물리지 않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마다 공주는 불쾌했다. 조금 전 왕이 그랬던 것처럼 왕비와 둘이서만 이야기 하고 싶었다. 이는 왕비가 공주의 사생활과 체면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비는 이를 무시했다. 공주는 힘의 논리로 자신을 상대하려는 왕비의 의중을 읽어냈다. 주변에 시녀들을 둠으로써 공주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려는 게 분명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공주는 회의실을 가로 질러 왕비의 맞은편 노란색 벨벳 의자에 앉았다. 벽난로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왕비가 미리 계산한 또 하나의 계책이었다. 상대방을 따뜻한 벽난로 가까이에 앉혀 무방비상태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왕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게임보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상아조각 하나를 복잡한 미로위로 밀어 넣었다.

“네 차례구나.”

왕비가 입을 열었다.

공주는 게임보드로 시선을 옮겼다. 왕비가 아직도 이 게임을 끝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랬다. 갈색 조각으로 왕비를 상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 몇 주간은 왕비와 게임을 하지 않았다. 왕비는 장기의 고수였다. 그러나 공주는 왕비보다 장기를 잘 뒀다. 왕비는 결코 패배를 용납하지 않았다. 분명 지난 몇 주간 게임을 분석해 완벽한 한 수를 생각해낸 게 분명했다. 이제 공주가 나타났고 왕비는 공주를 다시 게임에 참여토록 했다.

왕비와 달리 공주는 게임을 분석할 필요가 없었다. 공주는 장기판을 힐끔 보고 머릿속으로 완벽한 수를 찾았다. 공주는 팔을 뻗어 갈색 말을 장기판 가장자리로 옮겼다. 이로써 왕비는 어느 말을 움직이든 질 수 밖에 없었다.

왕비는 무표정한 얼굴로 장기판을 바라봤다. 단지 눈썹을 살짝 깜빡였을 뿐이었다. 덕분에 공주는 왕비가 당황한 걸 눈치챘다. 공주는 분명 왕비보다 똑똑했다. 그러나 왕비에게는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왕비는 여전히 공주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장기판을 주시한 채 목을 가다듬었다.

“그 평민 아이와 벌이는 너의 무모한 장난을 모두 알고 있단다. 넌 내게 반항했어.”

왕비가 고개를 들어 공주를 바라봤다.

“왜지?”

공주는 긴장감에 깊은 숨을 들이켰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그럴듯한 대답을 하고 싶었다. 절대로 굴복할 수 없었다. 이번만은 그럴 수 없었다.

“제 사생활은 어머니께서 신경 쓰실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내가 신경을 써야 할 문제 같은데. 네 사생활은 왕권과 연관됐다. 우리 가족의 운명과 링 대륙과도 연관됐지. 네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사생활은 그 자체로써 하나의 정치야. 넌 평민이 아니잖니. 네 삶에 사생활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내게 감출 수 있는 네 사생활도 존재하지 않아.”

왕비의 말투가 무정하고 차가웠다. 공주는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줄 곳 억울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왕비의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것뿐이었다.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

왕비는 목을 가다듬었다.

“네가 내 말을 거역했으니, 너를 대신해서 내가 결정을 내려야겠구나. 다시는 그 아이를 만나지 말거라. 만약 이를 어기면 그 아이는 왕의 부대에서 제명되고, 왕실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추방될 거야. 그리고 형구도 씌울 거다. 그 아이의 가족까지 모두 다. 불명예로 쫓겨난 신세로 전락하는 거야. 그리고 너도 다신 그 아이 소식을 들을 수 없을 거다.”

왕비는 노여움에 아랫입술을 바르르 덜며 공주를 바라봤다.

“알아 듣겠니?”

공주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처음으로 왕비가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가늠하게 된 순간이었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왕비가 미웠다. 시녀들이 초조한 눈빛으로 공주를 힐끔거렸다. 치욕이 따로 없었다.

공주가 대답도 꺼내기 전에 왕비가 말을 이었다.

“더 나아가, 네 무책임한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네게 합당한 짝을 정해줘야겠다. 다음 달 첫째 날에 알톤과 결혼할거라. 당장 결혼 준비를 하는 게 좋겠구나. 유부녀가 될 각오를 단단히 하렴. 이상이다.”

왕비의 말투는 오만했다.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뱉어버린 듯 왕비는 아무렇지 않게 장기판에 시선을 돌렸다.

공주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화가 치밀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죠.”

공주의 분노가 서서히 고조됐다.

“제가 어머니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보이세요? 정말로 제가 누구든지 어머니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거라 생각하세요?”

“생각하는 게 아니다. 결과를 알고 있는 거지. 넌 내 딸이니 내 말을 듣거라. 그리고 내가 결혼하라는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다.”

“아니요, 그렇게 안 해요! 그리고 어머니 마음대로 그렇게 못하실 거예요! 폐하께서 어머니가 절 마음대로 하지 못 할거라 하셨어요!”

“정략결혼 결정권은 왕국의 모든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다. 그리고 왕과 왕비라면 더욱 그러하지. 폐하의 태도가 나와 다르다고 해도 너도 알고 있잖니, 폐하께서는 언제나 내 뜻에 수긍해 주시는 걸. 내 뜻대로 될 거다.”

왕비는 공주를 노려봤다.

“이제 알겠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렴. 네 결혼은 이미 진행 중이야. 나도 이제 막을 수 없구나. 너도 준비하도록 해.”

“그렇겐 안 할 거예요. 절대요. 제게 계속 이런 말씀을 하시면 더 이상 어머니와 대화하지 않겠어요.”

왕비는 고개를 들어 공주를 봤다. 차갑고 일그러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나와 절대 말을 안 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난 네 엄마지 친구가 아니야. 그리고 여전히 난 너의 여왕이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된다 해도 괜찮다. 결국엔 내가 하란 대로 할거고, 난 멀리서 내가 정해준 인생을 사는 네 모습을 지켜볼 거야.”

 

왕비는 다시 장기에 집중했다.

“이제 가보렴.”

왕비는 마치 하녀에게 하듯 손짓으로 공주를 물렸다.

분노로 가득 찬 공주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기판 앞으로 세 걸음 걸어가 양 손으로 장기판을 던져버렸다. 상아 조각들이 날아가고 커다란 장기판이 넘어져 산산조각 났다.

왕비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어머니를 증오해요.”

공주는 달아오른 얼굴로 뒤로 돌아 회의실을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쫓아와 붙잡는 시녀들의 손을 물리치고 스스로의 의지로 걸어나갔다. 다시는 왕비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제 26장

토르는 몇 시간 동안 구불구불한 숲 속 산책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걷는 내내 그웬 공주 생각뿐이었다. 머릿속이 온통 공주로 가득했다. 함께 한 시간은 마법 같았고 기대 이상이었다. 덕분에 공주의 마음을 의심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졌다. 완벽한 하루였다. 다만 불청객의 등장으로 서둘러 헤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실존 여부도 불분명할 정도로 희귀한 백사는 불행의 전조였다. 물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토르는 옆에서 졸졸 쫓아오는 새끼 표범을 내려다봤다. 늘 그렇듯 크론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만약 크론이 그 순간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두 사람을 구해주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해봤다. 지금쯤 두 사람은 이미 죽어있었을까? 토르는 크론에게 평생의 빚을 졌다. 크론이야 말로 일생을 함께할 든든한 친구가 아닐 수 없었다.

여전히 백사가 마음에 걸렸다. 보통 희귀한 뱀이 아닐뿐더러 백사의 서식지가 왕국 내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단 말인가? 왜 하필이면 그 순간 토르와 공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기이한 일이었고 분명 무언의 암시였다. 그웬 공주와 마찬가지로 토르 또한 백사를 흉조로 여겼다. 죽음의 전조. 허나 그 대상이 누구란 말인가?

일부러 다른 생각을 하며 불안한 생각들을 떨치기 위해 애셨지만 소용없었다. 백사의 모습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토르를 괴롭혔다. 막사로 돌아가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훈련이 없는 날이었기에 대신해서 숲 속 산책길을 반복해 돌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백사의 등장은 다름아닌 다가올 흉조에 신속히 대비하라는 경종이 분명했다.

갑작스럽게 끝난 공주와의 데이트에 토르는 더욱 속이 상했다. 두 사람은 숲에서 나오자마자 작별의 인사도 없이 서둘러 헤어졌다. 공주의 마음 속이 산란해 보였다. 백사가 원인일 거라 짐작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공주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공주가 다시 마음을 바꾼 걸까? 토르가 혹시 뭘 잘못한 걸까?

생각만으로도 토르의 가슴이 찢어졌다. 뭘 해야 할지 몰라 토르로서는 몇 시간 내내 숲 속을 배회하는 것뿐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통찰하고 죽음의 전조를 해석해 줄 수 있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절실했다.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토르의 머릿속에 아르곤이 떠올랐다. 아르곤이야 말로 적임자였다. 그라면 토르에게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걱정을 덜어줄 게 분명했다.

먼 곳을 내다봤다. 가장 동떨어진 능선의 북쪽 끝에서 보니 왕실 도시가 한눈에 펼쳐졌다. 가까이엔 교차로가 있었다. 북쪽 외각 볼더 평야에 아르곤이 홀로 지내는 오두막이 있었다. 이곳에서 도시 반대편으로 왼쪽 길을 따라가면 아르곤의 오두막이 나온다. 토르는 오두막을 향해 길을 나섰다.

긴 여정인데다 설사 그곳에 도착한다 해도 아르곤을 만날 거란 보장이 없었다. 허나 시도라도 해야 했다. 답을 얻기 전까지 토르는 한시도 불길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좀더 속도를 높여 평야를 향해 힘차게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오후가 됐다. 햇살이 찬란하게 내리는 아름다운 여름날이었다. 크론은 토르 옆을 따라 뛰었다. 때때로 멈춰서 다람쥐를 공격했고 의기양양하게 입에 물기도 했다.

초원이 사라지고 돌과 바위가 가득한 황량한 땅이 이어지자 길이 급격히 가팔라지고 굴곡도 심해졌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길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나무도 자라지 않는 높은 곳까지 올라오니 기온이 뚝 떨어졌고 세찬 바람이 불었다. 돌과 바위가 넘쳐났다. 오싹한 곳이었다. 저 멀리까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돌과 흙과 바위가 전부였다. 황무지를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내 길이 끊겨버린 까닭에 토르는 자갈밭 위를 걸어갔다.

크론이 옆에서 울어댔다. 이들을 둘러싼 주변 공기에 소름이 돋았다. 사악한 기운은 아니었지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짙게 드리워진 영적인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을 무렵 저 멀리 언덕 위에 돌로 지은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링 대륙의 형상을 띤 완벽한 원형이었다. 납작한 오두막은 검은 돌로 지어졌다. 창문도 없었고, 손잡이 없는 아치형 출입문 단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과연 이토록 황량한 곳에 마법사가 머무른단 말인가? 허락도 없이 찾아와 노여움을 사는 건 아닐까?

잠깐의 망설임 끝에 원래대로 발길을 재촉했다. 문 앞에 서자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문을 두드리려 손을 뻗는 내내 전율이 느껴지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문이 조금 열렸다. 틈 사이로 비춰지는 내부는 온통 검은색이었고 혹시 바람에 문이 밀린 게 아닌가 생각했다. 사람이 살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두웠다.

토르는 다시 손을 뻗어 조심스레 문을 밀고 고개를 넣어 안을 살폈다.

“계신가요?”

문을 좀 더 밀었다.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제외하면 내부는 빛 하나 없는 암흑이었다.

“계신가요? 마법사님?”

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크론이 토르 옆에서 울부짖었다. 아르곤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때를 잘 못 맞춰 온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르는 계속 아르곤을 찾아봤다. 두 발자국 안으로 들어가니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돌아보니 저 멀리 벽면에 아르곤이 서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토르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청객이로군.”

“용서하세요. 마음대로 들어오려던 건 아니었어요.”

토르는 주변을 살폈고 점차 어둠에 익숙해져 시야가 밝아졌다. 돌로 된 벽면 가까이 원형으로 배치된 양초가 보였다. 조명이라고는 천장에 뚫린 작은 원형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 한줄기가 전부였다. 삭막하면서도 압도적이고 초현실적인 공간이었다.

“이곳에 들어와본 사람은 거의 없단다. 물론 자네도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했겠지. 저 문은 열려야 할 때만 열린단다. 출입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은 세상 그 무엇을 이용해도 저 문을 열 수 없지.”

토르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자신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는 아르곤이 신기했다. 아르곤과 관련한 모든 일은 그저 신비할 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걸 봤습니다.”

토르는 모든 걸 다 토로하고 아르곤의 의견을 구해야 했다.

“뱀을 봤어요. 백사요. 우리 둘 다 물릴뻔했는데 제 표범 크론이 저희를 구해줬어요.”

“우리라니?”

너무 구체적으로 얘기한 것 같아 토르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혼자 있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누구와 있었던 거지?”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망설여진 토르는 혀를 살짝 깨물었다. 어찌됐든 아르곤은 폐하와 친분이 두텁다. 폐하께 모든걸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게 왜 백사와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절대적으로 연관됐지. 그게 백사가 나타난 이유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가?”

토르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단순히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게 전부 너와 연관된 건 아니지. 다른 사람과 연관될 수도 있단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아르곤을 살펴보자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공주가 사악한 운명에 휩싸인 걸까? 만약 그렇다면, 토르가 도울 수 있을까?

“운명을 바꿀 수 있나요?”

아르곤은 천천히 몸을 돌려 걸었다.

“물론이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수세기 동안 받아온 질문이란다. 운명이 바뀔 수 있냐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 의지라는 게 있지. 개인의 선택이 운명을 결정하기도 한단다. 정해진 운명과 자유의지가 나란히 한 사람의 인생 속에 함께하는 게 불가능해 보이겠지만 실은 그렇게 이뤄져 있단다. 운명과 자유의지가 절충되어 행동으로 보여지는 것이지. 운명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다만 구부러지거나 더한 경우 바뀔 수 있지. 대단한 희생과 강력한 자유의지가 맞물린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단다. 거의 모두가 운명을 개척하기보단 수긍하며 살아가지.

“그렇다면 왜 백사를 통해 경고를 하는 거죠? 어차피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면요?”

아르곤이 몸을 돌려 미소 지었다.

“이해가 빠른 건 인정해야겠구나. 대부분 자기보호 차원에서 전조를 보는 거란다. 마음의 준비를 갖출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미래의 운명을 암시해주는 거지. 가끔씩은, 드문 경우지만 결정된 운명을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조가 대신하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단다.”

“정말로 백사가 죽음을 암시하나요?”

아르곤은 토르를 살펴봤다.

“그렇단다, 빗나간 적이 없지.”

아르곤의 대답에 두려움에 휩싸인 토르의 심장이 요동쳤다. 예상과 달리 직설적이었던 아르곤의 대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백사를 봤어요. 그렇지만 누가 죽는 건지 알 길이 없어요. 또 그 죽음을 막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게 안돼요. 백사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왜죠?”

아르곤은 오랫동안 토르의 얼굴을 읽어낸 후 한숨을 쉬었다.

“그건 바로 누구의 죽음이든 네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죽음이 네 운명과 관련 있어.”

토르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아르곤의 대답을 들을수록 궁금증만 쌓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타당하지 않아요. 누가 죽는지 저도 알아야겠어요. 미리 경고를 해주고 싶어요!”

아르곤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려줄 순 없단다. 그리고 네가 알게 된다 해도 할 수 있는 건 없을 거다. 죽음은 언제나 목적을 달성한다. 설령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대체 왜 백사를 본 거죠?”

토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왜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 거죠?”

아르곤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눈빛이 어두운 방안을 모두 밝힐 만큼 격렬하게 빛났고 이에 토르는 크게 당황했다. 강렬한 태양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토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시선을 피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아르곤은 토르의 어깨를 살짝 짚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길에 토르의 몸에도 한기가 서렸다.

“아직 어리구나. 아직도 배우는 중이야. 너무 깊게 느끼고 있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지. 그러나 반대로 무자비한 저주가 될 수도 있단다. 운명에 수긍해 사는 자들은 운명을 인식하지 못한단다. 운명을 인식하고 예지하는 능력이야말로 가장 큰 고통이 될 수 있지. 넌 아직도 네 능력을 이해 못하고 있단다. 그렇지만 곧 이해 할거야. 언젠가 말이다. 네 출신을 알게 되는 순간.”

“제가 어디서 왔는데요?”

토르는 혼란스러웠다.

“네 어머니의 고향. 여기서 아주 먼 곳이지. 캐니언 협곡 너머, 미개왕국 와일즈 너머에 있는 곳. 하늘 가까운 곳에 궁전이 하나 있단다. 절벽 위에 자리잡아 그곳에 가기 위해선 구불구불한 돌길을 쭉 따라가야 하지. 마치 하늘에 오르는 것 같은 신비한 길이란다. 엄청난 힘이 내제된 곳이지. 바로 그곳이 네가 태어난 곳이야. 네가 직접 가 보기 전까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곳에 가게 된다면 네 궁금증이 모두 해결되겠지.”

토르는 눈을 깜빡였다. 눈을 뜨는 순간 놀랍게도 아르곤의 오두막 밖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떻게 갑자기 이곳에 서있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자갈 밭 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고 강렬한 땡볕에 절로 실눈이 떠졌다. 토르 옆에는 크론이 칭얼거리고 있었다.

토르는 다시 오두막 앞으로 걸어가 사력을 다해 문을 두드렸다. 돌아오는 건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아르곤님!”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다시 한번 문을 열어봤다. 온몸으로 문을 밀어붙여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알지도 못한 채 토르는 그 자리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날이 많이 어두워졌고 결국 더 이상 있어봐야 소용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경사진 자갈밭을 걸어내려 갔다.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막을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이 예정됐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황폐한 땅이 펼쳐졌고 걷는 순간 발목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살펴보니 바닥에 두꺼운 안개가 쌓이고 있었다. 안개는 계속 쌓여 순식간에 올라왔다. 토르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고 크론 또한 울부짖었다.

걸음을 재촉해 최대한 빨리 숲에 도착하려 했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뒤덮인 안개 덕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어찌된 일인지 팔다리가 천근만근이었고 하늘이 주문에 걸린 듯 어둡게 변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더 이상 걸음을 뗄 수도 없었다. 안개 속에서 그대로 바닥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주저 앉았다. 눈을 떠보려는 시도도, 몸을 움직여보려는 노력도 모두 허사였다. 얼마 후 토르는 잠이 들었다.

*

토르는 산 정상에서 왕국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토르의 시야야 닿는 곳까지 아름다운 여름날의 왕궁과, 궁전, 요새, 정원, 나무, 언덕들이 펼쳐졌다.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했다. 아름다운 음악과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광경을 주시하며 천천히 몸을 돌리는 순간 푸른 잔디가 흑 빛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과일들이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나무들은 차츰 말라붙어 모습을 감췄고 만발했던 꽃들은 그대로 시들었다. 놀랍게도 건물들이 하나씩 차례로 무너졌고 끝내는 왕국 전체가 돌밖에 없는 황무지로 변해버렸다.

발 밑을 보니 어느 순간 나타난 커다란 백사가 토르의 두 발 위로 기어 올랐다. 백사가 무릎을 지나 허리를 감고 팔을 묶어놓는 순간까지 토르는 무방비 상태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백사는 토르와 얼굴을 마주하고 오랫동안 토르의 눈을 주시하더니 스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토르의 뺨에 닿을 듯이 혀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입을 쫙 벌여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고 앞으로 머리를 쭉 빼 토르의 얼굴을 집어 삼켰다.

토르는 비명을 질렀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궁 안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텅텅 빈 곳이었다. 왕좌가 있던 자리도 휑하니 비었다. 바닥에는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운명의 검이 누워 있었다. 창문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고 형형색색 물들여진 색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쌓여 있었다.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곧장 몸을 돌려 음악소리를 따라 황폐한 방을 지나 또다시 황폐한 방을 지났다. 마침내 눈 앞에 높이가 30미터는 돼 보이는 커다란 문이 나타났고 토르는 사력을 다해 문을 열었다.

토르가 들어선 곳은 왕실 연회장이었다. 눈 앞에 양 옆으로 끝도 없이 긴 연회 테이블 두 개가 연회실 끝까지 펼쳐졌다. 그 위로는 산해진미가 넘치도록 쌓여 있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연회실 가장 안쪽 끝에 한 남자가 있었다. 다름아닌 맥길 왕이었다. 왕은 왕좌에 앉아 토르를 주시했다. 그러나 토르는 왕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왕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테이블 사이로 걸어 들어가 연회실을 가로질렀다. 토르가 발걸음을 옮기자 양쪽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이 변하기 시작했고 지나간 자리의 산해진미가 썩어 파리까지 꼬였다. 토르 주변으로 온통 파리떼들이 윙윙거리며 음식을 뜯어먹었다.

좀 더 속도를 냈다. 이제 3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왕이 있었다. 순간 시중 하나가 옆방에서 와인이 든 커다란 황금술잔을 들고 들어왔다. 황금으로 만든 술잔에 루비와 사파이어를 두른 남다른 술잔이었다. 왕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 토르는 시중이 하얀 가루를 술잔에 넣는 모습을 포착됐다. 독약이었다.

시중은 왕에게 술잔을 내밀었고 맥길 왕은 손을 뻗어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안돼요!”

토르가 비명을 질렀다.

왕이 든 술잔을 쳐내기 위해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었다. 왕은 와인을 들이켰다. 왕의 뺨을 타고 와인이 흘렀고 가슴위로 떨어졌다.

고개를 돌려 토르를 바라보는 왕의 동공이 열려있었다. 왕은 양 손을 올려 목을 쥐었다. 끝내 왕좌에서 떨어져 무릎을 꿇고 구역질을 하다 돌 바닥위로 쿵 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머리에서 벗겨진 왕관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져 멀리 굴러갔다.

쓰러진 그대로 미동도 없던 왕은 눈을 뜬 채 사망했다.

에스토펠레스가 날아와 죽은 왕의 머리 위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토르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울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 강렬해 토르의 등줄기에 한기가 느껴졌다.

“안돼!”

토르는 울부짖었다.

*

비명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토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쉬었다.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며 위치를 확인했다. 여전히 오두막 가까이에 있는 산 바닥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게 분명했다. 안개는 말끔히 사라졌고 하늘을 보니 어느새 동틀 녘이었다. 저 멀리 핏빛처럼 붉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며 새벽을 밝혔다. 토르 옆에서 칭얼거리던 크론이 토르의 무릎 위로 올라가 토르의 얼굴을 핥았다.

토르는 가쁜 숨을 고르며 한 손으로 크론을 안아 올렸다. 잠이 들었던 건지 깨어 있었던 건지 헷갈렸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걸음 떨어진 바위 위에 에스토펠레스가 앉아있었다. 커다란 매는 토르와 눈을 맞추고 계속해서 날카롭게 울었다.

그 소리에 토르의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꿈에서 들었던 바로 그 울음이었고 이를 확인한 순간 방금 꾼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는 걸 굳게 확신했다.

폐하께서 독살을 당하시는 게 분명했다.

새벽빛이 밝아질 무렵 토르는 서둘러 일어나 왕궁을 향해 전속력으로 산을 내려갔다. 왕을 만나야 했다. 위험을 알려야 했다.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왕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했다.

*

도개교를 질주해 외각 성문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병사 두 명이 토르를 알아봤다. 덕분에 멈추지 않고 궁 안으로 들어섰고 쉬지 않고 달렸다. 크론도 토르와 함께 뛰었다.

왕실의 안뜰을 가로질러 분수들을 지나치고, 왕이 거주하는 궁전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네 병의 병사들이 토르 앞을 막아 섰다.

토르는 숨을 헐떡이며 질주를 멈췄다.

“무슨 용무지?”

병사 한 명이 물었다.

“이해 못하시겠지만 저 좀 들여보내주세요. 폐하를 뵈어야 합니다.”

병사들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자기네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왕의 부대 소속 토르그린입니다. 꼭 들여보내주셔야 합니다.”

“저 아이를 알고 있네, 우리와 같은 폐하의 병사야.”

병사 한 명이 다른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우두머리 병사가 앞으로 나섰다.

“네가 폐하께 무슨 볼일이지?”

여전히 숨을 고르며 토르가 대답했다.

“매우 급한 용무입니다. 꼭 한번은 뵈어야 합니다.”

“음, 폐하께서는 널 보고 싶어하시지 않으실 거다. 약속도 없이 찾아왔잖아. 폐하께서 자리에 계시지 않아. 정무를 돌보시기 위해 이미 몇 시간 전에 왕실 마차를 타고 떠나셨어. 오늘 저녁 열리는 왕실 축제 전까지는 돌아오시지 않을 거다.”

“축제요?”

토르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꿈속의 축제 테이블이 생각났다. 끔직하게도 모든 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래, 축제. 부대원이면 너도 그곳에 참석하겠지. 아무튼 폐하께서는 이미 떠나셨고 네가 폐하를 뵐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오늘 저녁 축제나 참석해. 부대원들과 함께.”

“그렇지만 꼭 전해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요! 축제 전에 해야 해요!”

토르가 완고하게 주장했다.

“원한다면 내게 말해라. 그렇다고 해도 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전해드릴 수 없다는 건 명심해.”

병사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순 없었다. 아마 토르를 정신병자쯤으로 치부할게 분명했다. 오늘밤 축제가 시작하기 전 직접 폐하에게 전해야 했다. 이제 토르가 간절히 소망하는 건 토르의 메시지가 너무 늦지 않게 전해지는 것뿐이었다.

제 27장

새벽이 지날 무렵 서둘러 막사에 도착하니 운 좋게도 이제 막 훈련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토르는 여전히 크론과 함께였다.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지만 곧장 훈련을 받기 위해 이제 막 줄을 서기 시작한 부대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줄을 맞춰 서며 숨을 골랐다. 마음속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했다. 오늘 저녁 축제까지 왕에게 위험을 알릴 유일한 기회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느라 훈련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왕에게 미리 위험을 알려주라는 뜻에서 토르 앞에 백사가 나타난 게 분명했다. 왕국의 운명은 이제 전적으로 토르에게 달렸다.

토르는 기진맥진 한 상태로 리스왕자와 오코너에게 달려갔고 다 같이 줄을 맞춰 섰다.

“어젯밤 어디 있었어?”

리스 왕자가 물었다.

뭐라 대답은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토르도 어젯밤 자신의 거처가 불분명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아르곤 집 근처 산 위에서 깜빡 졸았다고 해야 할까? 토르 스스로도 믿기 힘든 대답이었다.

“잘 모르겠어.”

“모른다는 게 무슨 말이야?”

오코너가 물어봤다.

“길을 잃었었어.”

“잃어?”

“길을 잃고서도 다시 잘 찾아왔다니 다행이야.”

리스 왕자가 안심했다.

“오늘 훈련에 늦었으면 아마 부대에서 제명됐을 거야. 반갑다. 어제 너 없으니까 생각나더라.”

엘덴이 다가와 육중한 손으로 토르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토르는 여전히 캐니언 협곡 순찰 이후 달라진 엘덴의 태도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누나랑은 어떻게 됐어?”

얼굴이 붉어진 토르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만나긴 했어?”

“네, 만났죠. 정말 즐거웠어요. 급하게 헤어지긴 했지만요.”

“음, 오늘 누나 실컷 볼 수 있을 거야. 멋 좀 내봐. 저녁에 축제잖아.”

리스 왕자가 콜크 사령관과 대원들을 앞에 두고 줄을 서며 말을 이었다.

토르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토르는 다시 한번 꿈을 상기했다. 눈 앞에서 운명이 춤을 추고 있는데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용!”

콜크 사령관이 외치며 서서히 부대원들 앞을 걸었다.

 

모든 부대원이 침묵했고 토르도 이들과 같이 경직된 자세로 서있었다.

사령관은 이리저리 줄을 가로지르며 부대원들을 하나씩 관찰했다.

“어제 충분히 놀았겠지. 이젠 훈련에 임할 시간이다. 오늘은 고대부터 내려온 도랑파기 기술을 배울 차례다.”

일제히 불평하는 소리가 일어났다.

“시끄럽다!”

부대원들은 다시 침묵했다.

“도랑을 판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중요함은 간과할 수 없다. 너희들도 언젠가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황야에 나가 왕국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할거다. 깜깜한 어둠이 되면 발가락에 감각도 없어질 만큼 추위가 매섭게 닥쳐오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선 뭐든지 하게 될 거다. 또는 전장에 나가 적군의 화살세례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곳을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도랑을 파야 하는 이유는 수백 가지가 넘도록 많다. 앞으로는 도랑을 자주 접하게 될 거다. 오늘, 너희들은 두 손에 피가 나고 굳은 살이 박힐 때까지, 허리가 부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가지 하루 종일 도랑을 팔 거다. 그리고 나면 언젠가 전장에 나설 때쯤 도랑 파는 건 우습게 여겨질 거다.”

“따라와라!”

부대원들은 제각각 불평을 늘어 놓으며 두 줄로 사령관을 따라 훈련장을 행군하기 시작했다.

“잘됐다, 도랑파기야 말로 정말 하루 종일 해보고 싶었던 거야.”

엘덴이 말했다.

“최악이 될 수도 있어, 오늘 비 올 확률이 커.”

오코너가 걱정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머리 위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확률일 뿐이잖아.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마.”

리스 왕자가 대답했다.

“토르!”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돌아보니 사령관이 토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토르는 사령관에게 달려갔다.

“네, 주군.”

“네 후견인이 널 소환했다. 왕궁에 가서 에레크 명장에게 보고해라. 오늘 훈련을 빠지다니 운이 좋군. 대부분의 충실한 후견부대원들이 그러하듯 너도 오늘은 네 후견인을 보좌한다. 내일 돌아오면 넌 혼자서 도랑파기 훈련에 임한다. 가봐!”

토르는 뒤를 돌아 부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대원들의 얼굴을 마주한 뒤 다시 궁을 향해 뛰었다. 에레크 명장은 왜 토르를 호출한 것인가? 왕과 관련된 것인가?

*

왕궁으로 뛰어간 토르는 지금껏 한번도 가본적 없는 실버 부대 막사로 길을 꺾었다. 실버 대원들의 막사는 왕의 부대 막사와 비교해 규모가 훨씬 컸고 건물은 두 배나 됐다. 청동으로 외관을 장식한 건물 밑으로는 새로 돌을 깐 길이 나있었다. 실버 대원들의 막사에 가기 위해선 커다란 아치형 입구를 통과해야 했다. 그곳은 12명의 병사가 지키고 있었다. 입구 앞으로 길이 넓게 펼쳐진 길은 들판과 울타리로 둘러싸인 복잡한 석조 건물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또 다른 수십 명의 병사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인상적인 장관이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니 들판이 더 잘 보였다. 병사들은 이미 저 멀리서 접근하는 토르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와 창을 교차해 길을 막았다. 그러고는 토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통행을 차단한 채 시선을 정면에 고정했다.

“무슨 용무지?”

“임무를 수행하려 왔습니다. 전 에레크 명장님의 후견부대원입니다.”

병사들이 신중하게 눈빛을 교환했고 다른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은 뒤로 물러서 무기를 거뒀다. 그러자 아주 천천히 문이 열리며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금속 못이 올라갔다. 문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두께가 반 미터는 족히 돼 보였고 이곳이 왕궁보다 더 요새화된 것 같았다.

“오른쪽 두 번째 건물로 가거라. 마구간에 가면 명장님께서 계실 거다.”

토르는 길을 따라 안뜰을 거쳐 석조건물을 지났다. 보이는 모든 것이 반짝거렸고, 깨끗했고,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강인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구간을 찾은 토르는 눈 앞의 광경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크고 아름다운 수십 마리의 말들이 건물 밖에 줄지어 묶여 있었다. 대부분의 말들은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말들에게서 광채가 흘렀다. 이곳의 있는 건 그게 무엇이건 전부 크기가 남달랐고 웅장했다.

무장한 실버들이 여기 저기서 말을 달렸다. 안뜰을 가로질러 곳곳에 난 출입문을 오가며 막사 밖으로 나가거나 내부로 들어오는 모습이었다. 정신 없는 곳이었고 전쟁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말 그대로 이곳은 훈련이 아닌 생사의 갈림길을 나누는 전쟁을 위한 공간이었다.

토르는 작은 원형 입구로 들어서 어두운 복도를 따라 내려갔다. 마구간을 하나씩 지나며 에레크 명장을 찾아 다녔다. 마지막 마구간까지 찾아봤지만 명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명장님을 찾고 있는가?”

병사가 물었다.

토르는 뒤로 돌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군. 저는 그분의 후견부대원입니다.”

“늦었군. 이미 말을 길들이려 나가셨다. 빨리 가봐.”

복도를 나온 토르는 마구간을 벗어나 들판으로 뛰어갔다. 그곳에 에레크 명장이 있었다. 백마 한 필과 몸집이 크고 윤이 나는 씩씩한 흑색 종마 한 필이 함께 있었다. 토르의 등장에 흑마가 흥흥거렸고 이에 명장이 뒤를 돌아봤다.

“죄송합니다, 주군, 최대한 빨리 온 겁니다. 늦으려던 건 아니에요.”

토르는 가쁜 숨을 참으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

“딱 맞춰 왔구나.”

명장이 우아한 미소를 지었다.

“라닌하고 인사 나누렴.”

명장이 흑마를 가리켰다.”

라닌은 대답이라도 하듯 껑충거리며 콧방귀를 겼다. 토르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어 코를 쓰다듬었고, 이에 라닌은 부드럽게 칭얼거렸다.

“내 장거리 여행용 말이란다.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실버 전사들은 말을 여러 필 거느리고 있단다. 마상경기용, 전쟁용, 혼자서 떠나는 긴 여행용 등이 있단다. 이 녀석은 앞으로 네가 가장 친하게 지내야 할 녀석이다. 라닌이 널 마음에 들어 하는구나. 잘됐어.”

라닌은 앞으로 다가와 토르의 손바닥에 코를 비볐다. 눈 앞에 말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에 토르는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라닌의 눈동자에 영민함이 어려 있었다. 모든걸 다 이해하는 듯한 라닌이 살짝 섬뜩하기도 했다.

순간 토르는 방금 전 명장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긴 여행이라고 하셨나요, 주군?”

명장은 안창을 조이다 말고 몸을 돌려 토르와 눈을 맞췄다.

“오늘이 내 생일이란다. 이제 스물 다섯이 됐어. 좀 특별한 날이지. 선택일이라고 들어 봤니?”

토르는 고개를 저었다.

“대충이요, 주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주워들은 게 전부에요.”

“링 대륙의 전사들은 대를 이어 전사를 배출하지. 전사들은 스물 다섯이 되기 전까지 신부를 정해야 해. 정하지 못하면 법에 따라 1년 동안 신부를 찾아 떠나야 하고 1년이 지나기 전에 신부를 데리고 돌아와야 한단다. 만약 그때도 신부를 찾지 못하면 폐하께서 대신 신부를 정해주시지. 우리의 선택권은 박탈당하는 거야. 그래서 오늘 난 신부를 찾아 긴 여정에 나선단다.”

말문이 막힌 토르는 그저 명장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주군, 떠나신다는 거죠? 일년 동안이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덜컥 주저앉았다. 세상이 토르를 중심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 순간에서야 비로소 토르는 자신이 명장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깨달았다. 명장은 토르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토르는 명장을 친부보다 더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럼 제 후원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리고, 어디로 가시는 거죠?”

명장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을 비롯해 그 동안 얼마나 명장을 의지했는지 토르는 다시금 깨달았다. 명장이 떠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에레크 명장은 속 편하게 웃을 뿐이었다.

“무슨 질문부터 대답해줘야 하나? 걱정 말거라. 내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다른 실버가 널 후원할거야. 캔드릭 왕자, 폐하의 첫째 아들.”

덕분에 토르의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토르는 캔드릭 왕자에게도 명장과 같이 부성애를 느꼈다. 더군다나 제일 처음 토르를 인정해주고 부대원이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사람이 바로 캔드릭 왕자였다.

“나의 여정은 어디까지냐…… 나도 모르겠구나. 확실한 건 남쪽으로 간다는 거야. 내가 태어난 왕국 쪽으로. 그곳에서 신부 감을 찾을 거란다. 만약 링 대륙에서 찾지 못한다면 바다를 건너 내 왕국으로 가서 신부를 찾을지도 몰라.”

“명장님의 왕궁이라니요?”

이제 보니 토르는 명장의 출신을 비롯해 명장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한치의 의심도 없이 명장이 링 대륙 출신일거라 마음대로 생각했었다.

명장이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다 건너 이곳에서 아주 먼 곳. 그렇지만 자세한 건 다음에 얘기해줘야겠구나. 긴 여정을 앞뒀으니 이젠 준비를 해야지. 좀 도와주겠니. 시간이 없어. 마구를 좀 채우고 그 속에 각종 무기를 챙기거라.”

토르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신속히 몸을 움직였다. 말 전용 무기고로 달려가 검은색과 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눈에 뛰는 라닌의 갑옷을 집어왔다. 토르는 차례대로 무기를 집어왔다. 우선 라닌의 등에 말 전용 코트를 올리고 팔을 뻗어 옷을 제대로 입혔다. 그리고 나선 라닌의 얼굴에 도금된 얇은 금속 장신구를 씌었다.

토르의 손길에 라닌이 기분 좋게 울었다. 사람으로 치면 고귀한 전사나 다름 없었다. 마치 전사가 그러하듯 라닌은 갑옷을 편안해했다.

토르는 재빨리 신발에 부착하는 명장의 금빛 장신구를 가져왔고 명장이 말에 오르자 명장을 도와 장신구를 차례대로 부착했다.

“무기는 어떤걸 챙겨야 하나요, 주군?”

명장은 토르를 바라봤다. 아래서 올려다보니 말에 탄 에레크 명장이 더욱 거대해 보였다.

“일년의 여정 동안 어떤 전투를 맞닥뜨릴지 알 수 없구나. 우선 사냥도 해야 하고 스스로도 보호해야 하겠지. 그럼 긴 검을 챙겨야겠다. 단검이랑 활과 화살, 단창, 철퇴, 단도, 방패도 챙겨다오. 그 정도만 챙기면 되겠지.”

“네, 주군.”

토르는 대답과 함께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라닌의 마구간 옆에 있는 명장의 무기 진열대로 달려가 수십 개의 무기를 눈으로 훑었다. 참으로 훌륭한 무기고였다.

에레크 명장이 지시한 무기들을 한꺼번에 조심스레 들고나와 일부는 명장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안전하게 안창에 채웠다.

라닌 위에 앉은 명장은 출발을 준비하여 양 손의 가죽 장갑을 단단히 잡아 당겼다. 토르는 도저히 떠나는 명장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가 없었다.

“주군, 저도 함께 가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제 후견인이시잖아요.”

명장은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서 해야 하는 여정이야.”

“그럼 첫 번째 도항까지만 배웅하게 허락해주시겠어요? 만약 남쪽으로 가신다면 제가 길을 잘 알아요. 저는 남부지방 출신이거든요.”

명장은 사려 깊은 표정으로 토르를 내려다봤다.

“첫 번째 도항까지라면 굳이 말릴 필요 없겠다. 그렇지만 온종일 말을 타고 가야 하니 지금 당장 출발해야겠구나. 부대원을 위해 마련해둔 말을 타거라. 마구간 뒤에 있다. 갈색 털에 붉은 갈기를 가진 녀석이야.”

토르는 마구간으로 달려가 명장이 말한 말을 찾았다. 말에 오르니 셔츠 안에 숨어있던 크론이 고개를 내밀고 칭얼거렸다.

“겁먹지마, 크론.”

토르가 크론을 진정시켰다.

토르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말을 재촉해 마구간을 빠져 나왔다. 명장은 토르의 모습이 보이자 기다림을 끝내고 라닌과 함께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토르는 사력을 다해 명장을 쫓아갔다.

두 사람은 왕궁 밖을 향하는 성문으로 함께 달렸다. 병사 몇 명이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섰다. 옆으로는 여러 명의 실버 대원이 줄을 서서 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장이 지나가자 이들은 일제히 두 주먹을 들어올려 경례했다.

명장의 후견을 받는 부대원으로서 명장과 나란히 말을 타고 달리니 뿌듯한 마음이 앞섰다. 비록 첫 번째 도항까지였지만 명장을 배웅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됐다.

아직 명장에게 못다한 얘기가 너무 많았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감사하고 싶은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허나 역시 시간이 부족했다. 두 사람은 평지를 가르며 남쪽으로 질주했다. 늦은 아침 왕실에서 나온 길을 따라 쭉 달리자 지형이 계속해서 변했다. 언덕 하나를 지나고 보니 저 멀리 들판 위로 허리가 끊어질세라 땅을 파고 있는 부대원들이 보였다. 순간 토르는 저 곳에 있지 않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부대원들을 주시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일어나 토르를 향해 공중에 주먹을 들어올렸다. 태양빛에 눈이 부셔 확실히 볼 순 없었지만 리스 왕자가 토르에게 경례를 하는 것 같았다. 토르도 말을 달리며 주먹을 올려 왕자의 경례에 답했다.

말끔히 포장된 도로가 끝나고 제멋대로 난 시골길이 펼쳐졌다. 길이 좁고 험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생겨난 시골길보다도 더 형편없었다. 일반인들 혼자서 이곳을 지나는 건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길 곳곳에 매복한 도둑들로 어둑해지면 더욱 위험했다. 이런 면에서 토르는 안심할 수 있었다. 에레크 명장 옆을 달리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사실 강도를 마주치면 토르는 자신의 안위보다 강도를 더 걱정해야 할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제정신을 가진 강도라면 감히 실버 대원에게 함부로 대적하는 일은 없기 마련이었다.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타고 달렸고 덕분에 체력이 많이 소모됐다. 숨도 가빴다. 한편 에레크 명장의 체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신에 토르는 나약해 보일 까봐 명장에게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눈에 익은 커다란 교차로를 지났다. 교차로에서 우회하면 고향으로 가는 길이었다. 잠시였지만 고향에 대한 향수가 밀려왔다. 지금쯤 아버지는 무얼 하고 계실지, 양은 누가 돌볼지, 토르가 돌아오지 않아 아버지가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모두 궁금했다. 아버지가 염려돼서라기 보다는 잠시 익숙했던 기억들이 그리워졌을 뿐이었다. 사실 토르는 작은 마을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꼈고 다시는 그곳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남쪽 영토를 향해 계속해서 질주했다. 남부 도항에 대해선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토르가 그곳에 직접 갈 일은 없었다. 남부 도항은 링 대륙의 남쪽을 이어주는 삼대 주요 교차로 중 하나였다. 왕궁에서부터 거의 반나절을 달려왔고 이제 날이 저물 일만 남았다. 땀이 났고 숨이 찼다. 오늘밤 왕의 축제까지 시간 안에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이곳까지 명장을 따라온 게 실수였을까?

언덕을 돌자 드디어 저 멀리 눈 앞에 첫 번째 도랑이 명백하게 보였다. 도랑에는 크고 긴 탑이 세워져 있었고 사각 탑의 네 모퉁이마다 왕의 깃발이 각각 휘날리고 있었다. 난간에서는 실버 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탑 꼭대기에서 경계를 서던 실버 대원이 에레크 명장을 보자 트럼펫을 불었고 그 소리에 문지기가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도랑까지는 기껏해야 100미터 정도였다. 명장은 달리는 말을 세워 천천히 걸었다. 이제 정말 명장과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토르는 다시 한번 긴장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명장이 확실히 돌아오리란 보장도 없었다. 일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고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배웅할 기회라도 건진 게 다행이었다.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었다. 말들이 거친 숨을 쉬었고 명장 또한 거친 숨을 쉬며 탑으로 향했다.

“앞으로 오랫동안 못 보겠구나. 내가 돌아오면 난 신부와 함께겠지.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그렇지만 무슨 일이 생기든 분명한 건 넌 영원한 내 후견부대원이라는 사실이다.”

명장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떠나기 전에 네게 명심시킬 일이 있구나. 전사는 힘이 아닌 총명함이 만드는 거다. 용기만으론 전사가 될 수 없어. 용기와 명예와 지혜가 조화를 이뤄야 해. 반드시 네 기상과 마음을 완벽히 다스려야 한다. 기사도는 얻어지는 게 아니라 달성하는 거야. 이를 위해 반드시 노력해서 더 나은 네 모습을 만들어가거라. 내가 없는 동안 넌 각종 무기들을 다뤄보고 각종 기술들을 연마할거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하거라. 우리에겐 또 다른 관점의 전투가 있어. 바로 마법사의 관점이지. 아르곤 님을 만나거라. 네 숨겨진 능력을 개발해. 네게서 그 힘이 느껴진단다. 넌 엄청난 가능성을 지녔어. 절대 부끄러워할 게 아니란다. 알겠니?”

“네, 주군.”

토르는 명장의 지혜와 이해심에 감동했다.

“널 내 밑에 두고 보호한 건 다 이유가 있단다. 넌 남들과 달라. 네겐 엄청난 운명이 함께 하고 있어. 심지어 내게 내려진 운명보다도 더욱 위대한 운명일거다. 그렇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 절대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안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훌륭한 전사가 되려면 용기와 기술만으론 안돼. 전사의 기량을 갖추고 언제나 그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해야 한단다. 타인을 위해 네 삶을 던질 수 있어야 해. 훌륭한 전사는 부나 명예, 지위나 영광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훌륭한 전사가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통스럽단다. 바로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는 일이지.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단다. 단순히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신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뛰어난 내일의 너를 만드는 거야. 반드시 네 부족한 면을 성찰해야 한다. 또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 보호해줘야 한단다.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전사로의 원정이란다.”

토르는 명장의 말을 귀담아 듣고 숙지했다. 명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했다. 더불어 명장의 말을 모두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라 예상했다.

두 사람은 남부도랑의 입구에 도착했다. 몇 명의 실버 대원들이 말을 타고 명장을 마중 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커다란 미소가 가득했고 명장에게 다가오더니 말에서 내려 명장의 등을 두드렸다. 오랜 친구 사이 같았다.

토르도 말에서 내려 라닌의 고삐를 잡고 수문 앞 관리소로 이동해 먹이를 챙겨주고 보듬어주었다. 명장이 몸을 돌려 그곳에 서 있는 토르를 바라봤다. 마지막 인사였다.

고별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차마 아직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았다. 감사함을 전하고 싶었고 토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싶었다. 백사와 이상한 꿈, 왕을 향한 불안감 등등 명장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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